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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신학/교회이야기

성경 정경화 이야기 #4 : 여러 공의회를 거쳐 어느 정도 자리잡은 정경화

by 사카린스마일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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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드디어 우리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도착했습니다.
 
지금까지 기원전부터 4세기 초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걸어왔죠.
 
구전에서 시작해서 토라가 형성되고,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을 인용하며 신약의 씨앗을 뿌리고, 초대교회 교부들이 치열하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는 과정까지 말이에요.

이제 궁금한 건, 과연 언제 어디서 우리가 아는 그 성경 66권이 최종 확정되었느냐는 점입니다. 혹시 어떤 극적인 순간이 있었을까요? 교황이나 황제가 "이제부터 이 66권이 성경이다!"라고 선포하는 장면 말이에요.

그런데 정답을 미리 말씀드리면...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어요! 오히려 여러 공의회와 교부들의 결정이 점진적으로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4-5세기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어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니케아 공의회의 삼위일체 교리 확립, 그리고 로마제국의 국교화까지...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서 성경 정경화도 마침내 마무리되었습니다.


     서기 367년 부활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매년 보내는 부활절 편지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편지는 달랐어요. 39번째 편지에서 그는 처음으로 신약성경 27권의 정확한 목록을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이 구원의 샘이니, 목마른 자는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만족할 것이다. 이 책들에서만 경건의 교훈이 선포된다. 아무도 이것들에 더하거나 빼지 말라."

이 편지가 이집트 전역의 교회들에 전달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드디어!"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200년 넘게 계속된 논란이 마침내 정리되는 순간이었거든요. 하지만 아타나시우스도 하루아침에 이 목록을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그 이전 50년간의 치열한 논의와 결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Icon Santo Athanasius Agung


콘스탄티누스와 기독교의 변화 (313-337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교회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더 이상 지하 공동체가 아닌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것이죠. 이는 성경 정경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습니다. 주목적은 아리우스 이단 문제 해결이었지만, 이 공의회는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비록 성경 정경 목록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정통 교리의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어떤 문서들이 이 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할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더욱 직접적인 영향은 콘스탄티누스가 유세비우스에게 50권의 성경을 제작하도록 명령한 사건입니다(331년). 새로 건설되는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들에서 사용할 성경이 필요했거든요. 이때 어떤 책들이 포함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제국 차원에서 표준 성경의 필요성이 제기된 최초의 사례였어요.
 


동방교회의 정경관


4세기 동방교회에서는 여러 중요한 인물들이 성경 목록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90년)는 시 형식으로 성경 목록을 정리했어요. 그는 신약 27권 중 요한계시록만 제외하고 26권을 인정했습니다. 동방교회에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의구심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죠.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330-379년)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등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대체로 현재의 신약 정경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일부 책들(특히 요한계시록,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삼서)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어요.

금구(Gold mouth) 요한 크리소스토무스(349-407년)는 뛰어난 성경 해석가였지만, 요한계시록에 대해서는 주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동방교회의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서방교회의 결정들


서방교회는 동방교회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경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다마수스 1세(366-384년) 교황은 382년 로마 공의회에서 구약 46권, 신약 27권의 정경 목록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이는 현재 가톨릭 성경의 기본 구성과 동일해요.

하지만 더욱 체계적인 논의는 북아프리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히포 공의회(393년)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하에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성을 인정하고, 요한계시록을 포함시킨 것이 중요한 결정이었어요.

카르타고 공의회(397년, 419년)에서는 히포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더욱 구체화했습니다. 397년 공의회에서는 "정경 외의 어떤 것도 교회에서 하나님의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어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여 (354-430년)


성경 정경화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만큼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드물어요. 그의 "기독교 교양"(De Doctrina Christiana, 397년)에서 제시한 정경론은 이후 서방교회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정경 인정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어요:

1. 사도적 권위: 사도나 사도적 인물의 저작
2. 보편적 수용: 대다수 교회의 인정
3. 학문적 교회들의 우선성: 사도좌나 사도들이 많은 편지를 받은 교회들의 판단 우선
4. 내적 일치성: 다른 성경들과의 교리적 일치

특히 그는 구약 외경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입장을 밝혔어요. 70인역에 포함된 외경들(토빗서, 유딧서, 마카베오서 등)을 정경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후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지는 중요한 지점이 되었죠.
 


히에로니무스의 번역과 불가타 성경 (382-405년)


정경 확정과 함께 중요한 것은 신뢰할 만한 번역본이었어요. 히에로니무스가 다마수스 교황의 요청으로 제작한 불가타(Vulgate) 성경은 이런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구약의 경우 70인역이 아닌 히브리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했고, 신약은 그리스어 원문을 정교하게 라틴어로 옮겼어요. 특히 그는 구약 외경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는데, 이는 후에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불가타 성경은 중세 서방교회의 표준 성경이 되었고, 트렌트 공의회(1546년)에서 공식 인정받아 가톨릭교회의 공인 번역본이 되었어요.
 


최종 정리: 367년 아타나시우스 편지


이 모든 논의들의 정점은 367년 아타나시우스의 39번째 부활절 편지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현재 우리가 아는 신약 27권의 정확한 목록을 제시했어요:

복음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역사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 13권
공동서신: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
예언서: 요한계시록

아타나시우스는 이 27권 외에는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강하게 당부했어요. 이 편지가 동방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동서방 교회의 신약 정경에 대한 합의가 사실상 완성되었습니다.


     16세기 독일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들고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정말 사도적 권위를 갖고 있을까? 요한계시록은 어떻고?" 종교개혁자들은 1000년 넘게 확립된 정경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들도 4-5세기 교부들이 정리한 27권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비판적으로 검토해도, 그 27권이야말로 사도적 권위와 교회의 보편적 인정을 받은 최선의 목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거든요.


드디어 대장정의 끝에 도달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론 포로기부터 시작해서 5세기 아타나시우스의 선언까지, 무려 1000년에 걸친 성경 정경화의 여정을 함께 걸어왔네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성경 66권이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배운 중요한 교훈들:

1. 점진적 형성: 성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어요.
2. 위기가 기회로: 바빌론 포로기, 마르키온의 도전, 영지주의 등 위기 상황들이 오히려 정경화를 촉진했습니다.
3. 공동체의 인정: 개인이나 권력자가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믿는 공동체의 오랜 사용과 인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립되었어요.
4. 일관된 기준: 사도적 권위, 보편적 사용, 정통 교리와의 일치, 영적 권위라는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인간 공동체를 통해 보존하고 전수해주신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긴 시리즈를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댓글로 많은 질문과 관심을 보여주신 덕분에 더 풍성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더 깊이 알고 싶은 주제나 다음에 다뤘으면 하는 성경 관련 이야기가 있으시면 언제든 제안해 주세요. 성경을 더 깊이, 더 넓게 이해하는 여정은 계속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