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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신학/교회이야기

성경 번역의 역사 #1 : 70인역, 최초의 성경 번역 프로젝트

by 사카린스마일 2025.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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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정경화 시리즈에서는 어떤 책들이 성경이 되었는지 살펴봤다면, 이제는 그 성경들이 어떻게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었는지 알아볼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읽고 계시는 한글 성경,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예수님은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말씀하셨고,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한글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걸까요?

이 놀라운 여정의 출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인류 최초의 성경 번역 프로젝트, "70인역"(셉투아진타, Septuagint) 이야기 말이에요.

Lower part of col. 18 (according to the reconstruction by E. Tov) of the Greek Minor Prophets Scroll from Nahal Hever containing verses from Habakkuk (c. 50 BCE - 50 CE). The arrow points at the tetragrammaton in paleo-Hebrew script.



그런데 왜 하필 그리스어였을까요? 왜 알렉산드리아였을까요? 그리고 정말로 72명의 학자들이 70일 동안 완벽하게 똑같은 번역을 해냈다는 전설은 사실일까요? 이 모든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기원전 3세기 지중해 세계로 함께 떠나보시죠!


     기원전 285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왕궁.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가 거대한 도서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의 지식 저장고였죠. 그런데 왕에게는 하나의 고민이 있었어요.

"세계 각지의 모든 지혜를 모으겠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의 법전은 왜 없는가?"

왕의 곁에 있던 데메트리우스 팔레레우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유대인들의 성스러운 책들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어 저희가 읽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번역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어요. 왕은 예루살렘 대제사장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모두 능통한 최고의 학자들을 보내달라. 당신들의 법을 그리스어로 번역하고 싶다."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역사적인 일에 참여하게 될지 몰랐을 것입니다.



헬라화된 세계의 필요성


     알렉산더 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기원전 323년), 그의 제국은 분열되었지만 하나는 남았어요. 바로 그리스 문화와 언어의 영향력이었습니다. 이를 "헬레니즘"이라고 부르죠.

특히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적극적인 헬라화 정책을 펼쳤어요.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어가 공용어인 국제도시가 되었고, 여기에는 상당한 수의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히브리어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어요. 2-3세대가 지나면서 그리스어는 유창하지만 조상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잘 모르는 유대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들에게는 절실한 필요가 있었어요.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간인 토라를,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읽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말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야심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푸스(재위 283-246 BC)는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학문과 문화를 사랑하는 계몽군주였어요. 그의 꿈은 알렉산드리아를 세계 지식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무세이온(연구소)은 그의 이런 비전의 결정체였어요. 당시 세계 각지의 모든 지식을 수집하고 보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죠. 바로 유대인들의 종교 문헌이었어요.

유대인들의 지혜와 율법은 이미 고대 근동 지역에서 유명했습니다. 특히 그들의 일신교적 철학과 윤리 체계는 그리스 철학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어요. 왕에게는 이것이 도서관 컬렉션에 꼭 필요한 보물이었습니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와 전설의 시작


     70인역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Letter of Aristeas)라는 문서가 가장 유명한 기록입니다. 기원전 2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는 70인역 번역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어요.

편지에 따르면:

-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도서관 사서 데메트리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번역을 결정
- 예루살렘 대제사장 엘르아사르에게 편지를 보내 번역자 파견 요청
- 각 지파에서 6명씩, 총 72명의 학자들을 선발
- 이들을 파로스 섬의 별장에 격리하여 번역 작업 진행
- 72일 만에 완벽한 번역 완성

더욱 놀라운 것은 각자 따로 번역했는데도 모든 번역이 완전히 일치했다는 전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이 작용했다는 증거로 여겨졌어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구별


     현대 학자들은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핵심적 사실들은 역사적 신빙성이 있다고 봐요.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들:

-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이 시작됨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 하에 진행됨
-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추진됨
- 처음에는 토라(모세오경)만 번역되었고, 나머지는 점차적으로 번역됨

전설적 요소들:

- 72명이 정확히 72일 만에 완성
- 모든 번역자의 번역이 완전히 일치
- 왕의 직접적인 주도

실제로는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번역자들이 단계적으로 작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토라는 기원전 3세기경, 나머지 책들은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에 걸쳐 번역되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번역의 도전과 혁신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것은 단순한 언어 전환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완전히 다른 문화와 사고체계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었거든요.

언어적 도전들:

- 히브리어는 셈족 언어, 그리스어는 인도유럽어족으로 언어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름
- 히브리어의 종교적 개념들을 그리스어로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
-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가 모호한 부분들의 해석 문제

혁신적 해결책들:

- 새로운 그리스어 단어들의 창조 (예: "회당"을 뜻하는 συναγωγή)
- 기존 그리스어 단어에 새로운 종교적 의미 부여
- 히브리어 관용구의 창의적 번역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이름 "야훼"(YHWH)를 어떻게 번역할지는 큰 고민이었어요. 결국 "주"를 뜻하는 κύριος(퀴리오스)로 번역했는데, 이는 후에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지칭하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70인역의 특징과 영향


완성된 70인역은 히브리어 원문과 여러 차이점을 보였습니다:

내용의 차이:

- 일부 책들의 순서가 다름 (예: 역대기의 위치)
- 히브리어 본문에 없는 추가 내용들 포함
- 몇몇 책들의 분량이 더 길거나 짧음

외경의 포함:

- 토빗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서 등
- 이들은 히브리어 정경에는 없지만 그리스어 성경에 포함됨
- 후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정경 논쟁의 원인이 됨

번역의 질:

- 모세오경: 매우 정교하고 신중한 번역
- 예언서: 때로 의역적이고 해석적
- 성문서: 번역자마다 스타일과 정확도에 차이
 


초기 기독교에 미친 결정적 영향


70인역이 기독교 역사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 기자들의 주요 텍스트:

- 신약의 구약 인용 중 약 80% 이상이 70인역을 따름
- 마태복음의 "처녀가 잉태하여"(사 7:14)도 70인역의 번역
- 바울의 신학 용어들 상당수가 70인역에서 차용

선교적 의미:

-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에게 구약 소개
- 초기 교회의 헬라 지역 전도에 결정적 역할
- 구약과 신약을 하나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함

 
신학적 영향:

- 그리스 철학 용어들로 히브리 종교 개념 설명
- 후에 교부들의 신학 발전에 언어적 토대 제공
- 동방정교회의 구약 전통 형성


세월이 흘러 서기 1세기 소아시아의 어느 회당. 바울 사도가 일어나 성경을 펼쳤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라고 시작하며 읽어내려간 것은 그리스어로 된 이사야서였어요. 회당에 앉은 헬라계 유대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죠.

그 순간 바울도, 청중들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300년 전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거대한 번역 프로젝트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70인역이 없었다면 복음이 헬라 세계로 전파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인류 최초의 성경 번역 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한 왕의 학문적 호기심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절실한 필요가 만나면서, 성경 번역 역사의 첫 페이지가 열렸습니다.

70인역은 단순한 번역 그 이상이었어요. 히브리 종교가 헬라 문명과 만나는 다리였고, 후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고속도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놀라운 번역 작업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70인역이 유일한 번역은 아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어 번역의 한계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유대교와의 논쟁이 격화되었고, 더 정확한 번역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어요.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4세기 말의 또 다른 번역 혁명이었습니다. 다마수스 교황의 명을 받은 한 학자가 히브리어 원전으로 돌아가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는 대담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거든요.

다음 편 "히에로니무스와 불가타, 서방교회의 표준이 되다"에서는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계속해보겠습니다. 혹시 70인역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나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다음 편 예고: "히에로니무스와 불가타, 서방교회의 표준이 되다" - 4세기 말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라틴어 성경이 1000년간 서방교회를 지배하게 된 이야기를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