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번에는 기원전 시대 성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봤죠?
토라에서 시작해서 예언서와 성문서가 더해지면서 타나크가 만들어지고, 70인역이라는 그리스어 번역본까지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궁금해지는 건, 예수님은 과연 어떤 성경을 읽으셨을까 하는 점이에요.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펼치셨던 그 순간, 예수님 손에 들려진 두루마리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이사야서와 똑같았을까요?
그리고 바울 사도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고 말했을 때, 그 '모든 성경'의 범위는 정확히 어디까지였을까요? 혹시 지금의 신약성경도 포함된 말이었을까요, 아니면 구약만을 가리킨 것이었을까요?
1세기 팔레스타인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이 흥미로운 질문들을 함께 풀어보시죠!
서기 30년경 어느 안식일, 가버나움 회당. 예수님이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그 권위에 놀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1:22). 회당 앞쪽에는 나무 궤가 하나 있었고, 그 안에는 정성스럽게 보관된 토라 두루마리가 들어있었죠.
당시 회당 예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회당장이 토라 궤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봉독대에 올려놓습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토라 본문을 읽고, 이어서 하프타라(Haftarah)라고 불리는 예언서 구절을 읽었죠. 그리고 누군가가 일어나서 그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21)

수백 년 된 이사야의 예언이 바로 지금, 여기서 성취되었다는 선포였습니다.
1세기 유대교의 성경관
예수님과 사도들이 살던 1세기는 유대교 내에서도 성경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죠.
바리새파는 구전 율법(미쉬나)과 함께 성문 율법을 동등하게 중시했습니다. 그들은 토라뿐만 아니라 예언서와 성문서까지 포함하는 넓은 정경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특히 다니엘서나 에스더서 같은 후기 문서들도 받아들였습니다.
사두개파는 오직 토라만을 절대적 권위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부활 교리를 부정했던 것도 모세오경에 명확한 부활 교리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에세네파는 사해 두루마리에서 확인되듯이 일반적인 정경 외에도 자신들만의 특별한 문서들(1에녹서, 희년서 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성경
신약성경을 분석해보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어떤 범위의 구약을 '성경'으로 인정했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율법과 선지자"(마 5:17) 또는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눅 24:44)으로 언급하셨는데, 이는 당시 유대교의 삼중 구조(토라-네비임-케투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특히 "시편"으로 케투빔 전체를 대표시킨 것은 시편이 케투빔의 첫 번째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구약의 거의 모든 책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하셨지만, 에스더서, 전도서, 아가서는 인용하지 않으셨어요.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70인역의 영향
신약성경 기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주로 사용한 것은 히브리어 원문이 아닌 그리스어 70인역이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신약의 구약 인용 중 약 80% 이상이 70인역을 따르고 있어요.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70인역에는 히브리어 정경에 없는 외경들(토빗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신약 기자들은 이런 외경들을 '성경'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유다서가 1에녹서의 내용을 언급한 것처럼, 참고 자료로는 활용했죠.
신약성경의 시작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편지는 언제부터 '성경'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을까요?
흥미롭게도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서 이미 바울의 편지들을 "다른 성경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1세기 말경에 이미 사도들의 글이 구약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서 바울은 "성경에 일렀으되"라고 하면서 신명기 25:4와 함께 누가복음 10:7의 내용을 인용합니다. 이는 누가복음이 이미 '성경'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시사하죠.
초기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편지들이 점차 구약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사도적 권위를 가진 문서들, 즉 사도들이 직접 쓰거나 사도들의 동역자들이 기록한 글들이 중시되었어요.
정경과 외경의 경계
1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기독교 공동체는 어떤 책들이 진정한 '성경'인지 구별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영지주의 등 이단적 가르침들이 퍼지면서 정통 교리를 담은 신뢰할 만한 문서들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해졌거든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기준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 사도적 권위 (사도가 직접 기록했거나 사도의 증인)
- 교회의 광범위한 사용과 인정
- 정통 교리와의 일치
- 영적 권위와 감화력
세월이 흘러 서기 100년경. 소아시아의 어느 교회에서 주일 예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서 봉독이 끝나자, 이번에는 바울의 에베소서가 낭독됩니다. 회중들은 두 본문 모두를 동일한 경건함으로 듣고 있었죠.
이제 기독교 공동체에게는 두 종류의 '성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시고 인용하셨던 구약성경,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담은 새로운 성경 말입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성경'의 정확한 범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동하던 1세기는 구약 정경이 거의 완성되어 가던 시기이면서, 동시에 신약 정경의 씨앗이 뿌려지던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에서 인정받던 구약성경의 권위를 확인해 주셨고, 동시에 당신의 말씀과 사도들의 증언이 새로운 계시로서 성경과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되는 길을 여셨어요. "성경에 일렀으되"라는 말로 복음서를 인용한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미 신약 정경화의 시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시대가 끝난 후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 새로운 성경들을 정리해 나갔을까요? 속사도시대와 교부들은 어떤 기준으로 정경을 구별했을까요? 그리고 영지주의라는 위기 상황은 정경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다음 편 "초대교회 속사도 및 교부들이 보던 성경"에서 2-4세기의 치열했던 정경화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궁금한 점이나 더 깊이 알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로 나눠주세요!
다음 편 예고: "초대교회 속사도 및 교부들이 보던 성경" - 속사도시대부터 교부시대까지, 신약 정경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과 초기 교회의 치열한 고민들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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