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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신학/교회이야기

성경 정경화 이야기 #3 : 초대교회 속사도 및 교부들이 보던 성경

by 사카린스마일 2025.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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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어떤 성경을 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신약 정경화의 싹이 어떻게 트기 시작했는지 살펴봤습니다. 바울의 편지가 이미 "다른 성경과 같이" 인정받고 있었다는 베드로후서의 증언이 특히 인상적이었죠.

이제 사도 시대가 끝난 후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 차례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서기 95년경부터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325년까지, 약 230년간의 긴 여정 말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예수님을 직접 본 증인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글들이 진짜 사도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었을까요?

더욱 복잡한 문제는 2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수많은 위경들과 영지주의 문서들이었습니다.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바울행전... 사도들의 이름을 내걸고 등장한 이런 책들과 진짜 사도적 문서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었을까요?
 

     서기 144년, 로마. 한 부유한 선주의 아들이 자신만의 성경 목록을 들고 교회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르키온(Marcion). 그는 구약성경을 완전히 거부하고, 신약에서도 오직 누가복음과 바울서신 10권만을 인정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잔혹한 창조신이고, 예수님이 전한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신이다!"

마르키온의 주장은 당시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이론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경'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전파했거든요. 이것이 바로 최초의 신약 정경 목록이었습니다. 물론 이단적인 목록이었지만 말이에요.

이 사건은 정통 교회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어요. 어떤 책들이 진정한 사도적 권위를 가진 성경인지 명확히 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Polycarp of Smyrna


속사도 시대의 고민 (70-150년)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교회를 이끈 지도자들을 '속사도 교부들'이라고 부릅니다.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폴리캅, 바르나바 등이 대표적이죠.

클레멘트 1서(96년경)를 보면, 저자는 구약과 함께 마태복음과 고린도전서를 인용하면서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들(110년경)에서는 "복음"과 "사도들"을 구약의 "예언자들"과 병치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약 문서들이 구약과 동등한 지위를 얻어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폴리캅의 빌립보서(110-140년경)입니다. 바울의 제자였던 폴리캅은 바울의 편지들을 매우 높이 평가했지만, 동시에 "우리는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과 같이 될 수 없다"며 사도 시대의 종료를 인정했습니다.
 


변증가들의 기여 (150-220년)


     2세기 중반부터 교회는 체계적인 변증가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이교도들과 이단들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면서, 동시에 정경 개념을 더욱 명확히 해 나갔어요.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년)는 최초로 복음서들을 "사도들의 회상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복음서들이 구약 예언의 성취를 증명하는 핵심 문서라고 보았어요.

타티아누스(120-180년)는 더 나아가 네 복음서를 하나로 편집한 '디아테사론'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네 복음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일관된 예수 이야기를 만들려는 시도였죠.

이레나이우스(130-200년)는 정경화 역사에서 결정적 인물입니다. 그는 "이단 반박"에서 "네 복음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선언했어요. 마치 땅에 네 방향이 있고, 바람에 네 방향이 있는 것처럼, 복음서도 정확히 네 개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발전 (180-25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초대교회 최고의 학문적 중심지였습니다. 여기서 활동한 학자들이 정경 개념을 더욱 체계화했어요. 클레멘트 알렉산드리누스(150-215년)는 최초로 신약 문서들에 대해 포괄적인 인용을 남겼습니다. 그의 저작들을 분석해보면, 현재 신약 27권 중 대부분을 알고 있었고 권위 있는 문서로 여겼음을 알 수 있어요.

오리게네스(185-254년)는 더욱 정교한 분류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신약 문서들을 세 범주로 나누었어요:

- 인정받는 책들(Homologoumena): 네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13권,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
- 논란이 있는 책들(Antilegomena):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삼서, 유다서
- 거짓 책들(Pseudepigrapha): 베드로복음, 도마복음 등
 


정경 목록의 등장


3세기 후반부터는 구체적인 정경 목록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라토리 단편(180-200년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약 정경 목록입니다. 라틴어로 된 이 문서는 네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13권, 유다서, 요한일서, 이서,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어요. 흥미롭게도 히브리서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325년경)에서는 더욱 체계적인 분류를 볼 수 있습니다:

- 인정받는 책: 네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서신, 요한일서, 베드로전서
- 논란 있는 책: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삼서
- 거부되는 책: 바울행전, 헤르마스의 목자, 베드로묵시록 등
 


영지주의와의 대결


     2-3세기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영지주의였습니다. 발렌티누스, 바실리데스 같은 영지주의 지도자들은 자신들만의 복음서와 계시록을 만들어냈어요.

이에 대응하여 정통 교회는 사도적 계승의 원리를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성경은 사도들로부터 직접 이어받은 교회들에서 보존되고 전수된 문서들이라는 것이죠.

터툴리아누스(160-225년)는 이를 "사도적 규칙"(Regula Apostolica)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신앙의 핵심 내용에 부합하지 않는 문서는 아무리 고대의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이었어요.
 


정경화의 기준들


이 시기를 통해 정경 인정의 기준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1. 사도적 권위: 사도가 직접 기록했거나 사도의 동역자가 기록한 문서
2. 교회의 보편적 사용: 여러 지역 교회에서 예배와 교육에 지속적으로 사용
3. 정통 교리와의 일치: 사도들이 전한 신앙의 핵심과 부합
4. 영적 권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내적 증거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303-311년)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기독교인들의 성경을 모두 수거하여 불태우라고 명령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과연 어떤 책들이 기독교인들의 '성경'인가요?

관리들은 당황했고, 기독교인들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부는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던 책들을 내주면서라도 핵심적인 성경들은 숨겼어요. 하지만 어떤 것이 핵심이고 어떤 것이 부차적인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교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2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초대교회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사도들이 남긴 진정한 가르침을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위경들과 이단적 문서들을 걸러내야 했거든요.

마르키온의 도전으로 시작된 이 여정은 이레나이우스의 "네 복음서" 선언, 오리게네스의 체계적 분류, 그리고 유세비우스의 정교한 목록 작성까지 이어졌습니다. 사도적 권위, 교회의 보편적 사용, 정통 교리와의 일치, 영적 권위라는 네 가지 기준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요.

하지만 아직도 일부 책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어요. 히브리서는 바울이 썼을까요? 야고보서는 정말 사도 야고보의 작품일까요?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드디어 4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논란들을 정리할 결정적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니케아 공의회, 그리고 아타나시우스의 역사적 선언까지... 

다음 편 "여러 공의회를 거쳐 어느 정도 자리잡은 정경화"에서 이 드라마틱한 마지막 여정을 함께 완주해보시죠! 특히 궁금한 점이나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교부가 있으시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다음 편 예고: "여러 공의회를 거쳐 어느 정도 자리잡은 정경화" - 4-5세기 공의회들과 교부들의 최종 결정, 그리고 현재 우리가 아는 성경 66권이 확정되는 과정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