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제국 전역의 박해 (70-250년)
9장: 예루살렘 멸망과 교회의 흩어짐
유대 반란의 시작
서기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 총독 플로루스가 성전 금고에서 17달란트를 압수한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었다. 그러나 불만은 오래전부터 쌓여 있었다.
로마의 가혹한 세금, 이방 신들의 숭배 강요, 유대 총독들의 부패와 잔혹함. 특히 칼리굴라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 했던 사건(40년)은 유대인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반란은 순식간에 유대 전역으로 퍼졌다. 열심당원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 믿었다. 마카베오 시대처럼.
로마는 신속히 대응했다. 시리아 총독 케스티우스 갈루스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포위를 풀고 후퇴했다. 유대인들이 그를 추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유대인들에게 거짓 희망을 주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의 탈출
그러나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들은 주님의 예언을 기억했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성안에 있는 자들은 나가고, 지방에 있는 자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말라."
케스티우스가 포위를 풀었을 때, 그것이 신호였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 교회는 계시를 받아 요단강 동편 펠라로 피난했다.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들의 형제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하여 도망가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메시아가 오실 때가 되었다!"
"메시아는 이미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성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말은 유대인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배신자들. 겁쟁이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적으로 간주했다.
교회는 흩어졌다. 펠라로, 시리아로, 소아시아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분리가 결정적이 되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공격
네로가 67년에 유대 반란 진압을 위해 파견한 장군이 베스파시아누스였다. 그는 유능한 군인이었다. 그의 아들 티투스도 함께였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체계적으로 진군했다. 갈릴리부터 정복했다. 요세푸스라는 유대 지휘관이 투항했다. 그는 나중에 로마 시민이 되어 "유대 전쟁사"를 기록할 것이다.
68년, 네로가 자살했다. 로마에 내전이 일어났다. 한 해 동안 네 명의 황제가 바뀌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대 전쟁을 중단하고 로마로 갔다.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는 아들 티투스에게 유대 전쟁의 마무리를 맡겼다.
예루살렘 포위
70년 봄, 티투스가 4개 군단, 약 6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유월절 기간이었고 성안에는 순례자들까지 포함하여 백만 명 이상이 갇혔다.
포위는 5개월간 계속되었다. 성안에서는 파벌 싸움이 일어났다. 열심당, 시카리, 온건파가 서로 싸웠다. 식량 창고가 불탔다.
기근이 시작되었다. 요세푸스는 기록했다. "여인들이 자식을 삶아 먹었다." 레위기에 예언된 저주가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성벽을 넘어 로마군에게 투항하려 했다. 로마 군인들은 그들이 금화를 삼켰을 것이라 생각하여 배를 갈랐다. 하룻밤에 2천 명이 이렇게 죽었다.
티투스는 성벽 주위에 십자가를 세워 투항자들을 못 박았다. 경고였다. 하루에 500명씩 십자가에 달렸다. 나무가 부족해졌다.
성전의 파괴
8월, 로마군이 성전 구역을 공격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어느 로마 군인이 횃불을 던졌다.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성전이 불타기 시작했다.
티투스가 불을 끄라고 명령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는 성전을 보존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었다.
성전은 탔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그 성전이. 솔로몬이 지었고 스룹바벨이 재건했고 헤롯이 확장한 그 성전이.
금으로 장식된 벽이 녹았다. 금이 돌 틈으로 흘러들었다. 로마 군인들이 그 금을 얻으려고 돌을 하나하나 뒤집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대학살
9월 초,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110만 명이 죽었다. 9만 7천 명이 노예로 팔렸다.
로마 군인들이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학살이 시작되었다. 노인, 여인, 어린아이 가릴 것 없이. 피가 거리를 흘렀다.
일부 열심당원들은 마사다 요새로 도망쳤다. 그들은 3년 더 버텼다. 73년, 로마군이 마사다를 함락했다. 960명의 유대인이 자결했다. 로마의 노예가 되느니 자유인으로 죽겠다는 것이었다.
유대는 멸망했다. 성전은 파괴되었다. 유대교는 제사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현실을 맞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펠라에서 소식을 들었다. 슬펐다. 그들도 유대인이었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였다.
그러나 그들은 알았다.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예루살렘의 교회는 사라졌지만, 복음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성전은 무너졌지만,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성령의 전이었다. 제사는 끝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완전한 제사였다.
10장: 도미티아누스와 요한의 밧모섬 유배
도미티아누스의 지배
81년, 도미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는 형 티투스가 죽은 후 권력을 잡았다. 처음에는 온건했으나 점점 폭군이 되어갔다.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신으로 여겼다. 공식 서한에서 "우리 주님이시며 신이신 분(Dominus et Deus noster)"이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모든 신민이 그에게 경배하고 분향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부했다. "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도미티아누스는 분노했다. 그는 "무신론자들(atheoi)"을 색출하라고 명령했다. 황제 신격을 부인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박해가 시작되었다. 네로의 박해만큼 조직적이지는 않았지만 전국적이었다. 고발이 장려되었다. 이웃이 이웃을 고발했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의 순교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의 친척도 의심했다. 그의 사촌 플라비우스 클레멘스가 그리스도인으로 의심받았다.
클레멘스는 집정관이었다. 고위 귀족이었다. 그의 두 아들은 도미티아누스의 후계자로 지명되어 있었다.
95년, 도미티아누스가 그를 고발했다. 죄목은 "무신론"과 "유대 관습으로의 표류". 재판도 제대로 없었다. 클레멘스는 처형되었다.
그의 아내 플라비아 도미틸라는 폰티아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녀도 그리스도인이었다. 로마의 가장 오래된 카타콤 중 하나가 그녀의 소유지였다고 전해진다.
황제의 친척조차 안전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의미했다.
사도 요한과 에베소 교회
이 시기, 마지막 남은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였다.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맡았던 그 제자.
요한은 이제 노인이었다. 90세가 넘었을 것이다. 그는 에베소 교회를 돌보며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감독했다.
전설에 따르면, 노년의 요한은 교회에 갈 때 제자들이 부축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반복해서 같은 말만 했다.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왜 늘 같은 말씀만 하십니까?"
요한이 대답했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지켜도 충분하다."
끓는 기름 가마의 기적
도미티아누스의 박해가 에베소에 이르렀다. 요한이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요한은 라틴 문 앞에서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다고 한다. 순교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요한이 기름 속에서 상하지 않았다. 마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상하지 않은 것처럼.
로마인들은 놀랐다. 그들은 요한을 죽일 수 없었다. 도미티아누스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유배.
역사적으로 이 일화의 사실성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이것을 사실로 믿었다. 라틴 문 앞에 교회가 세워졌고, 매년 5월 6일을 기념일로 지켰다.
밧모섬으로의 유배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밧모섬. 에게해의 작은 섬. 로마의 유배지. 척박하고 외롭고 황량한 곳.
요한은 그곳에서 노동했다. 채석장에서 돌을 캤다. 90세가 넘은 노인에게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밤이면 요한은 동굴에서 잠을 잤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었다. 그는 기도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외로웠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사도. 다른 사도들은 다 순교했다. 베드로, 바울, 야고보, 안드레, 빌립... 모두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요한만 남았다. 왜 자신만? 끓는 기름에서도 죽지 않았다. 이제 이 외로운 섬에 홀로 남겨졌다.
그러나 외롭지 않았다. 주님이 함께하셨다.
주의 날의 환상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어느 주일이었다. 교회들이 예배드리는 시간. 요한은 밧모섬에 홀로 있었지만, 영으로 예배를 드렸다.
갑자기 뒤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 나팔 소리 같은.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요한이 돌아보았다. 일곱 금 촛대가 보였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서 계셨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요한은 그분을 알아보았다. 예수님이었다. 그러나 갈릴리에서 함께 걸었던 그 예수님과는 달랐다. 부활하시고 영광받으신 그리스도였다.
요한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
주님이 오른손을 그에게 얹으시며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주님이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라고 명령하셨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각 교회에 칭찬과 책망과 권면이 있었다.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아셨다. 그들의 수고와 인내를. 그들의 연약함과 타협도.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이 특별히 의미심장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박해가 계속될 것이었다. 더 많은 순교자가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묵시록의 환상들
이후 요한은 놀라운 환상들을 보았다. 하늘의 보좌, 어린양,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용이 나타났다. 사탄. 그리고 바다에서 짐승이 올라왔다.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짐승이 또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로마가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보였다. 순교자들의 피가 보였다. "땅에 거하는 자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음녀 바벨론이 보였다.
그러나 끝은 승리였다. 어린양이 이기셨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했다.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은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주님이 보여주셨다. 끝을. 결말을. 최종 승리를.
지금은 박해가 있다. 고난이 있다. 죽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다.
에베소로의 귀환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었다. 그의 전제 정치에 불만을 품은 궁정 관리들에 의해.
새 황제 네르바가 즉위했다. 그는 온건했다. 도미티아누스가 유배 보낸 자들을 돌아오게 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풀려났다. 그는 에베소로 돌아왔다.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묵시록이었다.
교회들이 그를 맞이했다. 환호했다. 울었다. 마지막 사도가 살아 돌아왔다.
요한은 그들에게 두루마리를 읽어주었다. 환상을 설명했다. 교회들은 위로받았다. 힘을 얻었다.
예, 박해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어린양이 이기셨다. 우리도 이길 것이다. 죽음으로. 그리고 부활로.
요한의 마지막 날들
요한은 에베소에서 몇 년을 더 살았다. 아마 100세를 넘겼을 것이다.
그는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다른 복음서들이 이미 널리 퍼진 후였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는 세 통의 편지도 썼다. 요한일서, 이서, 삼서. 그 편지들의 주제는 하나였다. 사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전설에 따르면, 요한의 마지막 날들에 제자들이 그를 교회로 부축해 갔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긴 설교를 할 수 없었다. 그저 한 문장만 반복했다.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매 주일, 같은 말.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왜 늘 같은 말씀만 하십니까?"
요한이 대답했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지켜도 충분하다."
어느 날, 요한이 조용히 잠들었다. 98년경의 일로 추정된다. 그는 순교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 중 유일하게 자연사한 사도였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도 순교자였다. 그는 평생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았다. 형제들이 순교하는 것을 보았다.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그리고 100년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았다.
요한이 죽었을 때, 사도 시대가 끝났다. 이제 교회는 제자들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에게 전승되어야 했다.
그러나 요한이 남긴 유산은 컸다. 그의 복음서, 편지들, 묵시록.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삶. "서로 사랑하라"는 그 단순하지만 깊은 메시지.
에베소 사람들은 요한을 성 요한 교회에 묻었다. 그 무덤 위에 후에 큰 성당이 세워졌다. 마지막 사도를 기념하여.
11장: 트라야누스 시대와 이그나티우스
트라야누스의 통치
98년, 트라야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는 현명한 통치자였다. 로마 제국을 최대 영토로 확장했다. 건축 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역사는 그를 "다섯 명의 좋은 황제" 중 한 명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트라야누스 시대는 복잡했다. 조직적인 박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할 수 있었다.
109-111년경, 비티니아 총독 플리니우스가 황제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플리니우스의 편지는 초대 교회에 대한 귀중한 자료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심문한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은 정해진 날 해 뜨기 전에 모여 그리스도를 신으로 여겨 찬송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도둑질하지 않고, 강도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약속을 어기지 않고, 맡은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이후 그들은 헤어져서 다시 모여 음식을 먹는데, 평범하고 해롭지 않은 음식입니다."
플리니우스는 고문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다. 두 여자 집사를 고문했지만 "과도한 미신"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황제에게 물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범죄인가? 아니면 그 이름과 결부된 범죄들이 문제인가? 배교한 자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트라야누스의 답변은 이러했다.
"그리스도인들을 일부러 찾아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발되어 유죄가 입증되면 처벌해야 한다. 단, 그리스도인임을 부인하고 우리 신들에게 경배하면 용서하라. 익명의 고발장은 받아들이지 말라. 그것은 우리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정책은 모순적이었다. 찾지는 말되 고발되면 처벌하라. 그러나 이것이 약 150년간 로마 제국의 공식 정책이 되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이 시기,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있었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전해진다. 안디옥 교회의 세 번째 감독이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열정적인 목자였다. 그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했다. 감독, 장로, 집사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단들과 싸웠다.
안디옥은 큰 도시였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처음 생긴 곳이기도 했다.
110년경, 이그나티우스가 체포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고발당했을 것이다. 어쩌면 공개적인 그리스도 고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로 압송되어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에게 던져질 예정이었다. 멀고 긴 여정이었다. 육로와 해로로, 수천 킬로미터.
교회들에 보낸 편지들
여정 중에 이그나티우스는 일곱 통의 편지를 썼다.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빌라델비아, 서머나 교회에, 그리고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에게.
이 편지들은 초대 교회의 귀중한 문서다. 그것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신학, 그의 열정, 그의 순교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에베소 교회에 그는 썼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돌들입니다. 아버지의 건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기중기로 들어 올려졌고, 성령이라는 밧줄로 끌어올려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위로 들어 올리고, 사랑이 여러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했다. 감독을 중심으로 하나 되라고. 성찬식을 함께 거행하라고. 분열을 경계하라고.
그러나 가장 놀라운 편지는 로마 교회에 보낸 것이었다.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로마에는 이미 큰 교회가 있었다.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한 곳. 네로의 박해를 견뎌낸 교회.
로마 교회가 이그나티우스를 구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황제나 고위 관리들에게 청원할 수 있었다. 로마 교회에는 귀족들도 있었다.
이그나티우스는 간청했다. 나를 막지 말라고.
"로마 교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의 명령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여러분에게 편지합니다. 다만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고난받기를 희망하면서 씁니다."
"나는 사자와 짐승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나를 빨리 주님께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것들을 달래고 격려하여 다른 순교자들을 먹을 때처럼 머뭇거리지 말고 나를 신속히 삼켜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빨로 갈려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빵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세상적인 호의를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이 세상에 속한 것들로 유혹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살아 있고 싶어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는 물이 살아 있어 속삭입니다. '아버지께로 오라.' 나는 죽은 음식이나 썩을 쾌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빵,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원합니다... 나는 그분의 피, 곧 썩지 않는 사랑을 마시기 원합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어떤 것도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불이든 십자가든, 짐승들의 무리든, 뼈가 부서지든, 사지가 찢어지든, 온몸이 으깨지든, 심지어 마귀의 모든 고문이든 –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만 한다면!"
이것은 죽음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었다.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리고 주님을 닮고 싶은, 주님처럼 고난받고 싶은 소망이었다.
서머나에서의 만남
여정 중 이그나티우스는 서머나에 들렀다. 그곳 감독 폴리캅이 그를 맞이했다.
폴리캅은 젊었다. 40대였을 것이다. 그도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 두 사람은 같은 스승에게서 배웠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교회에 대해, 이단들에 대해, 박해에 대해. 이그나티우스는 폴리캅을 격려했다.
"폴리캅, 강건하라. 선한 군사가 되라. 면류관은 불멸의 것이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다. 아마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을 알았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갈 것이고, 폴리캅은 서머나에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었다. 순교의 길을. 다만 시간이 다를 뿐.
로마에서의 순교
이그나티우스가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콜로세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중이 가득했다. 순교자를 보는 것은 로마의 오락이었다. 피의 스펙타클.
이그나티우스가 원형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얼굴에는 기쁨이 있었다.
사자들이 우리에서 풀려났다. 굶주린 짐승들. 그들은 이그나티우스를 향해 달려왔다.
이그나티우스는 도망가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나의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제 제가 당신께 갑니다..."
사자가 덮쳤다. 이빨이 살을 뚫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피가 모래에 쏟아졌다.
잠시 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몇 개의 큰 뼈만 제외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뼈들을 거두었다. 귀중한 유물처럼. 그들은 그것을 안디옥으로 가져가 묻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었다. "하나님의 밀알"이 맹수의 이빨로 갈렸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순결한 빵"이 되었다.
그의 편지들은 교회에 남았다. 그의 증언은 계속되었다. 그의 순교는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폴리캅이 서머나에서 소식을 들었다. 그는 울었다. 친구를, 동료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이그나티우스는 이제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폴리캅 자신도 언젠가 그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을.
12장: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 시대
하드리아누스의 통치 (117-138년)
트라야누스가 죽고 하드리아누스가 즉위했다. 그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황제였다. 그리스 문화를 사랑했다. "그리스 애호가(Philhellene)"라고 불렸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했다. 확장보다는 방어를. 브리타니아에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쌓았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의 정책은 트라야누스와 비슷했다. 조직적인 박해는 없었다. 그러나 고발당하면 재판받아야 했다.
125년경, 아테네의 철학자 아리스티데스가 하드리아누스에게 변증서를 제출했다.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글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신들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결하고 의롭게 삽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이웃의 물건을 탐내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재판할 때 공정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구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그네를 환대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모습이었다. 로마인들이 두려워할 반역자들이 아니라 사회에 덕을 끼치는 시민들이었다.
유대인 반란과 그리스도인들
132년, 유대에서 또 다른 반란이 일어났다. 바르 코크바의 반란이었다. 저명한 랍비 아키바가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라고 선언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메시아를 알았다. 예수 그리스도. 바르 코크바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이것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완전한 분리를 가져왔다. 이제 로마인들도 구별했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다르다고.
반란은 3년 만에 진압되었다. 하드리아누스는 가혹하게 보복했다.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 도시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를 세웠다.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출입을 금지했다.
유대인들은 다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가 더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랍비들을 중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순교자 텔레스포루스
138년경, 로마의 감독 텔레스포루스가 순교했다. 그는 로마 교회의 여덟 번째 감독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원래 은둔자였다고 한다. 홀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던 사람. 그러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교회에 합류했다.
텔레스포루스의 순교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이레니우스가 "영광스럽게 순교했다"고 증언했다.
아마 고발당했을 것이다. 황제 숭배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담대히 그리스도를 고백했을 것이다.
로마 교회는 슬퍼했다. 또 한 명의 목자를 잃었다. 그러나 교회는 계속되었다. 새로운 감독이 선출되었다. 하기누스, 그다음은 비우스.
순교는 교회를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를 강하게 만들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138-161년)
하드리아누스가 죽고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즉위했다. "경건한"이라는 뜻의 피우스. 그는 평화로운 통치로 기억된다.
안토니누스 시대에는 큰 박해가 없었다. 제국은 안정되어 있었다. 경제는 번영했다. "로마의 평화"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지역적인 박해는 계속되었다. 군중의 폭동, 지방 총독의 자의적 판단, 고발자들의 음모.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취약했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들의 생명은 황제의 기분, 총독의 의지, 군중의 감정에 달려 있었다.
순교자 저스틴 (유스티누스)
이 시기 가장 저명한 변증가가 나타났다. 저스틴, 혹은 유스티누스였다. 그는 철학자였다.
저스틴은 사마리아 네아폴리스(지금의 나블루스)에서 태어났다. 이교도 가정이었다. 그는 진리를 찾아 여러 철학 학파를 전전했다.
스토아 철학을 배웠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돈만 요구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에게 먼저 음악과 천문학과 기하학을 공부하라고 했다.
마침내 플라톤 철학에 이끌렸다. 이데아의 세계, 영원한 진리. 그것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어느 날 해변을 거닐고 있을 때 한 노인을 만났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노인이 저스틴에게 물었다.
"철학이 당신에게 행복을 주었습니까?"
저스틴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속 찾고 있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분이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노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저스틴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것이었다. 그가 찾던 진리. 플라톤의 이데아가 사람이 되었다. 로고스가 역사 속에 들어왔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러나 철학자의 옷을 벗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인 철학자"가 되기로 했다.
변증서들
저스틴은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학교를 열고 가르쳤다. 철학과 그리스도교를.
150년경, 그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에게 첫 번째 변증서를 제출했다. 그리스도인들을 변호하는 글이었다.
"황제 폐하, 우리는 부당하게 미움받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러나 이름이 죄가 될 수 있습니까? 행위로 판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고발하는 자들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우리는 가장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삽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살고,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실천합니다."
"우리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다고 고발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참 하나님만 경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황제를 존경하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황제를 사랑합니다."
저스틴은 계속해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설명했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세례와 성찬식. 주일 예배.
"우리는 태양의 날(주일)에 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첫날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날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은 명료하고 논리적이었다. 철학자의 글이었지만 신앙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또 다른 변증서를 썼다. 그리고 "트리포와의 대화"라는 책도 썼다. 트리포라는 유대인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었다. 예수가 메시아임을 성경으로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저스틴의 순교
165년경, 저스틴이 체포되었다. 철학자 크레스켄스가 그를 고발했다고 전해진다. 크레스켄스는 저스틴과 논쟁에서 졌고, 앙심을 품었다.
저스틴은 여섯 명의 제자와 함께 시장 관리 루스티쿠스 앞에 섰다.
루스티쿠스가 물었다. "네가 믿는 것이 무엇이냐?"
저스틴이 대답했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믿는 바를 믿습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너는 어디서 모이느냐?"
"각자 원하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모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티모티우스의 집 근처, 마르티누스의 목욕탕 위에 머물렀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가 와서 나는 그에게 진리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너는 그리스도인이냐?"
"그렇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루스티쿠스가 저스틴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들도 모두 고백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한 제자가 덧붙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인 것이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루스티쿠스가 저스틴에게 다시 물었다. "만일 네가 채찍질당하고 참수당한다면, 네가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하느냐?"
저스틴이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완전히 확신합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신들에게 제사를 드려라."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경건에서 불경건으로, 진리에서 거짓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고문당할 것이다."
저스틴이 평온하게 대답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서서 심판받을 그날에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똑같이 말했다.
루스티쿠스가 선고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희생 제사를 거부한 자들은 먼저 채찍질당한 후 참수형에 처한다."
순교자들은 한 곳으로 끌려가 매를 맞고 참수되었다.
철학자 저스틴은 자신이 찾던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는 말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진리에서 거짓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진리를 붙들었다. 그리고 진리이신 분을 만났다.
13장: 리옹과 비엔나의 순교자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 (161-180년)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었다. 역사는 그를 "철학자 황제"라 부른다. 그는 스토아 철학을 사랑했고 "명상록"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덕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재난으로 가득했다. 파르티아와의 전쟁(162-166년)이 있었고, 전쟁에서 돌아온 군대는 무서운 역병을 가져왔다. 안토니누스 역병이라 불리는 이 전염병은 아마도 천연두였을 것이다. 제국 전역을 휩쓸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북쪽에서는 게르만 부족들이 도나우 강을 넘어 침입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생애의 대부분을 변경에서 전쟁을 치르며 보냈다.
백성들은 불안했다. 역병, 전쟁, 경제적 어려움. 신들이 분명히 노한 것이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스도인들 때문이다! 그들이 신들을 모독해서 신들이 로마를 벌하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했다. "명상록"에서 그는 순교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완고한 집착"을 비판했다. 그것이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냉정하고 평온하게 죽어야지, 그렇게 극적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법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지방 총독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더 적극적으로 처벌하도록 독려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치세 동안 많은 박해가 일어났다.
갈리아의 교회들
로마 제국의 서쪽 변경,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역에도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리옹(Lugdunum)과 비엔나(Vienna)에 특히 큰 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들은 주로 동방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상인, 노예, 자유민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무역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 온 사람들이었다.
리옹 교회의 감독은 포티누스(Pothinus)였다. 90세가 넘은 노인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서머나의 폴리캅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사도적 전승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교회에는 다른 지도자들도 있었다. 비엔나 출신의 집사 상투스(Sanctus), 의사 알렉산더(Alexander), 페르가몬에서 온 아탈루스(Attalus), 그리고 가장 놀라운 인물 - 블란디나(Blandina)라는 젊은 노예 소녀.
박해의 시작 (177년)
177년 여름, 리옹과 비엔나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고조되었다. 역병이 여전히 돌고 있었다. 경제가 어려웠다. 곡물 가격이 올랐다. 사람들은 불안했고 분노했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괴롭힘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리에서 모욕을 당했다. 사람들이 침을 뱉었다. 돌을 던졌다. "무신론자들! 식인종들! 근친상간자들!"
온갖 거짓 소문이 퍼졌다. 그리스도인들이 비밀 모임에서 아기를 잡아먹는다는 것. 형제자매라 부르며 근친상간을 한다는 것.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것. (성찬식에 대한 악의적 오해였다)
곧 더 심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이 공공장소에서 쫓겨났다. 목욕탕, 시장, 광장 출입이 금지되었다. 집이 습격당했다. 재산이 약탈당했다. 가게가 파괴되었다.
당국은 처음에는 방관했다. 그러다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공공장소에서 발견된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었다. 광장에서, 집에서, 일터에서. 군중이 환호했다.
체포된 이들은 총독 앞에 끌려갔다. 심문이 시작되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냐?"
"예, 그렇습니다."
"황제의 천재성(genius)에 맹세하라. 우리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려라."
"저는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합니다."
채찍질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백을 철회하지 않았다.
노예들의 강제 증언
당국은 더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이교도 노예들을 체포하여 심문했다.
로마법에서 노예의 증언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문 아래서 얻은 증언은 예외였다. 노예들은 고문당하면 진실을 말한다고 믿었다.
심문관들은 소문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노예들을 고문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몇몇 노예가 거짓 자백을 했다.
"예! 그들이 아기를 먹었습니다!" "예! 그들이 근친상간을 했습니다!" "예! 비밀 의식에서 무서운 일들을 했습니다!"
이제 군중의 분노는 폭발했다. "괴물들이다! 인간이 아니다! 짐승들에게 던져라!"
더 많은 그리스도인이 체포되었다. 교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잡혔다. 감독 포티누스, 집사 상투스, 의사 알렉산더, 아탈루스, 그리고 블란디나까지.
감독 포티누스의 순교
90세가 넘은 노인 포티누스가 총독 앞에 끌려갔다. 그는 몸이 허약하여 걷기도 힘들었다.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두 명의 군인이 그를 부축해야 했다.
총독이 물었다.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누구냐?"
포티누스가 대답했다. "네가 합당하다면 알게 될 것이다."
총독이 분노했다. 이 늙은이가 감히 자신을 무시하다니!
"저 노인을 끌어내어 매질하라!"
군중이 포티누스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으로, 발로, 막대기로 때렸다. 가까이 있던 자들은 주먹과 발로 쳤고, 멀리 있던 자들은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던졌다. 자신의 친척이나 친구를 때리지 않는 것이 불경건한 일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노인의 몸이 땅에 쓰러졌다. 그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의식이 희미했다.
그들은 반쯤 죽은 그를 감옥에 던졌다.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
이틀 후, 포티누스는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평생을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았고, 마지막 숨까지 신실했다. 이제 그는 주님 곁에 있었다.
집사 상투스 -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상투스는 비엔나 출신이었다. 집사였고 로마 시민이었다. 그러나 시민권도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심문관들이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상투스가 대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네 고향은 어디냐?"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네 신분은 무엇이냐? 자유민이냐 노예냐?"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네 주인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가 노예일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모든 질문에 같은 대답만 했다. 라틴어로 "Christianus sum."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도시도, 민족도, 신분도 밝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 하나의 정체성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심문관들이 분노했다. 이 완고한 침묵을 깨뜨려야 했다.
그들은 상투스를 고문대에 묶었다. 먼저 채찍질을 했다. 살이 찢어졌다. 피가 흘렀다.
"네 이름을 말하라!"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음으로 뜨겁게 달군 청동판을 그의 몸에 댔다. 몸의 가장 부드럽고 민감한 부분에. 살이 지글지글 타는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타는 살 냄새를 맡으며 군인들조차 얼굴을 찡그렸다.
상투스는 신음했다.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그는 항복하지 않았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더 심한 고문이 이어졌다. 여러 날 동안. 그의 온몸이 부풀어 올라 한 덩어리의 상처가 되었다. 인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의사들이 말했다. "이 사람은 곧 죽을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더 이상 고문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상투스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부기가 빠지고 상처가 아물었다.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몸이 두 번째 고문에서 치유되고 곧게 펴졌다. 그래서 두 번째 고문은 형벌이 아니라 치료가 되었다."
심문관들은 다시 그를 고문대에 세웠다. 같은 장소를, 같은 방법으로 고문했다. 이미 상처를 입은 곳을 다시 고문했다. 이번에는 더 잔혹하게.
"이제는 항복하겠지. 두 번째 고통이 첫 번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상투스는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의 입술에서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이름이요, 민족이요, 도시요, 모든 것이었다.
의사 알렉산더
알렉산더는 의사였다. 프리기아 출신으로 오랫동안 갈리아에 살았다. 많은 사람을 치료하여 존경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아직 체포되지 않았었다.
어느 날, 그가 법정에 있었다. 다른 순교자들이 심문받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몸짓으로, 표정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담대하라. 굳게 서라. 주님이 너희와 함께하신다.'
총독이 이것을 알아차렸다. "저자를 잡아라!"
군인들이 알렉산더를 붙잡았다.
총독이 물었다. "너도 그리스도인이냐?"
알렉산더가 명확하게 대답했다. "예,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너도 같은 형벌을 받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지만 그 특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기꺼이 형제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원했다.
그도 상투스처럼 심하게 고문당했다. 그러나 그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심문관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유세비우스는 기록했다. "그는 한 마디 소리도 내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대화할 뿐이었다."
침묵으로 기도하는 것. 그것이 알렉산더의 저항이었다. 심문관들은 그의 입에서 어떤 말도 끌어낼 수 없었다. 신음도, 애원도, 저주도 없었다. 오직 평화로운 침묵만.
노예 소녀 블란디나
순교자들 중에 블란디나라는 젊은 노예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녀의 주인도 그리스도인이었고 함께 체포되었다.
주인은 블란디나를 몹시 걱정했다. 그녀가 너무 연약해서 고문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고통 때문에 배교하거나, 심지어 교회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도록 강요받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블란디나는 놀라운 용기를 보였다.
심문관들이 그녀를 고문대에 세웠다. 아침부터 시작했다. 채찍질, 화형대, 짐승들. 온갖 고문 도구가 동원되었다.
고문관들이 교대로 그녀를 고문했다.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대신했다. 그들은 그녀가 항복하도록 만들려고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저녁이 되었다. 고문관들이 지쳤다. 그들은 놀랐다. 이렇게 작고 약한 소녀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가?
블란디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온몸이 부서지고 찢어졌지만,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말뿐이었다. 계속, 반복해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 그녀에게 새 힘과 위로와 고통의 무감각을 가져다주었다."
작고 약하고 경멸받던 블란디나가 위대하고 무적의 선수임이 드러났다. 그리스도를 입은 그녀는 옛 뱀(사탄)을 짓밟았다.
블란디나는 다른 순교자들에게도 격려가 되었다. 그들은 블란디나를 보며 생각했다. '저 연약한 소녀도 견딘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원형경기장의 스펙타클
총독은 황제의 축일을 기념하여 대대적인 구경거리를 준비했다. 제국 전역에서 모인 대표들 앞에서 순교자들을 공개 처형하기로 했다.
원형경기장에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다. 갈리아 전역에서 사람들이 왔다. 피의 스펙타클을 보기 위해. 로마의 정의를 보기 위해.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보기 위해.
먼저 마투루스와 상투스가 끌려왔다. 그들은 다시 모든 고문을 겪어야 했다. 마치 이전의 고문이 부족했다는 듯이.
채찍질이 있었다. 맹수들에게 끌려다니는 것이 있었다. 뜨거운 의자에 앉히는 것이 있었다. - 쇠로 만든 의자를 불에 달구어 그 위에 앉혔다. 살이 타는 냄새가 경기장 전체에 퍼졌다.
군중이 환호했다. "더! 더!"
그러나 순교자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상투스는 여전히 같은 말만 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경기장 전체가 그 말을 들었다. 수천 명이 들었다.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고백하는 그 담대함을.
마침내 그들의 목을 베었다. 드디어 그들은 자유로워졌다.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블란디나의 마지막
블란디나는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순교자가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십자가에 묶인 채로.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녀는 십자가에 매달려 투쟁하는 형제들을 위해 크게 소리를 내어 기도했다. 싸우고 있는 자들은 육신의 눈으로 십자가에 달린 자매를 보았고, 그녀를 통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고난받는 자는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블란디나는 십자가에 달린 채로 다른 순교자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기도가 그들에게 힘을 주었다. 그녀의 모습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상기시켰다.
맹수들이 블란디나를 공격하도록 풀려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짐승들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있었을 때처럼.
군중이 놀랐다. 심문관들도 당황했다. 이것은 뭔가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블란디나는 십자가에서 내려졌다. 감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는 단지 연기된 것뿐이었다.
며칠 후, 마지막 날이 왔다. 이제 순교자 중에는 블란디나와 15세 소년 폰티쿠스만 남았다.
그들은 다시 원형경기장으로 끌려왔다. 다시 모든 고문을 겪어야 했다. 마지막 구경거리로.
블란디나는 폰티쿠스를 격려했다.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격려하듯이. 아니, 언니가 동생을 격려하듯이.
"담대하라, 폰티쿠스. 용기를 내라.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곧 주님을 만날 것이다. 곧 집에 갈 것이다."
폰티쿠스는 모든 고문을 견디고 숨을 거두었다. 소년은 용감한 전사로 죽었다.
이제 블란디나만 남았다. 모든 순교자 중 마지막. 가장 약했던 자가 가장 오래 버텼다.
그들은 그녀를 그물에 넣어 성난 황소 앞에 던졌다. 황소가 그녀를 뿔로 받아 공중으로 던졌다. 몸이 땅에 떨어졌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다시 황소가 받았다.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블란디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화가 있었다.
유세비우스는 기록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희망과 그녀가 믿는 것들을 붙잡고 그리스도와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들은 그녀를 죽여야 했다. 칼로. 이교도들조차 인정했다. "우리는 이런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우리 가운데 어떤 여자도, 어떤 남자도 이렇게 고난을 견딘 적이 없다."
블란디나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투쟁이 끝났다. 노예 소녀가 가장 위대한 승리자가 되었다.
아탈루스의 순교
아탈루스는 페르가몬 출신의 저명한 인물이었다. 그도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갔다. 경기장을 돌 때 사람들이 글씨판을 들고 있었다.
"이자가 그리스도인 아탈루스다."
군중이 외쳤다.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
아탈루스는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를 뜨거운 의자에 앉혔다. 쇠로 만든 의자를 불에 달구어. 살이 타는 동안 아탈루스가 라틴어로 말했다.
"보라, 이것이 인간을 먹는 것이다! 너희가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먹지 않으며 다른 어떤 악한 일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물었다. "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아탈루스가 대답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도 결국 참수되었다.
순교자들의 유해
순교가 끝난 후, 당국은 비정상적인 명령을 내렸다.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그들은 시신을 광장에 6일간 방치했다. 군인들이 지켰다. 밤낮으로.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새들이 날아와 시신을 쪼아 먹었다. 개들이 와서 뜯어먹었다. 군중이 지나가며 침을 뱉었다. 조롱했다.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부활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6일 후, 시신은 부패하고 훼손되었다. 당국은 남은 것을 모아 불태웠다. 뼈와 재를 모아 론 강에 뿌렸다.
한 관리가 조롱하며 말했다. "이제 그들이 부활을 믿는지 보자. 몸도 없이 어떻게 부활하겠는가? 그들의 하나님이 재와 강물에서 그들을 다시 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어떤 상태에서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
리옹 교회의 편지
박해가 끝난 후, 리옹과 비엔나의 생존한 그리스도인들은 편지를 썼다. 소아시아와 프리기아의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였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이 편지는 유세비우스가 그의 "교회사"에 보존했다. 그것은 초대 교회 순교 기록 중 가장 상세하고 감동적인 것 중 하나다.
편지는 겸손하게 시작한다.
"아시아와 프리기아에서 우리와 같은 믿음과 부활의 소망을 가진 형제들에게, 갈리아의 비엔나와 리옹의 하나님의 종들이 평강과 은혜와 영광을 빕니다."
편지는 순교자들의 고난을 자세히 기록한다. 그러나 그들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겸손을 강조한다.
"순교자들은 자신을 순교자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 중 누가 편지나 대화에서 그들을 순교자라고 부르면 심하게 꾸짖었다. 그들은 기꺼이 그리스도를 순교자의 칭호로 인정했다. 그분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죽은 자들의 처음 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생명의 창시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떠난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말했다. '그들은 이미 순교자이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고백을 받아들이시고 죽음의 인침으로 순교를 확증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작고 미천한 고백자들일 뿐이다.'"
편지는 또한 배교했다가 회개한 자들에 대한 순교자들의 자비를 기록한다.
"순교자들의 사랑과 평화와 화평이 너무나 위대하여, 그들은 살아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들은 배교자들을 용서했다. 순교자들은 배교자들을 위해 많이 울며 기도했다. 그들이 다시 살아나도록. 그리하여 동정녀 어머니인 교회가 그 자녀들을 다시 살아 낳도록."
이레니우스, 새로운 감독
포티누스가 순교한 후, 리옹 교회는 새로운 감독을 선출해야 했다. 그들은 이레니우스(Irenaeus)를 택했다.
이레니우스는 소아시아 출신이었다. 아마 서머나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젊은 시절 폴리캅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폴리캅이 앉았던 장소, 그가 들어오고 나갔던 곳, 그의 생활 방식, 그의 신체적 외모, 그가 군중에게 한 설교들을 말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사도 요한과의 교제에 대해, 그리고 주님을 본 다른 이들과의 교제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한다."
사도 요한 - 폴리캅 - 이레니우스로 이어지는 사도적 전승. 이것이 교회의 연속성을 보증했다.
이레니우스는 리옹에 와서 포티누스를 도왔다. 박해 당시 그는 로마에 있었다. 교회의 어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순교를 면했다.
이레니우스는 훌륭한 감독이 되었다. 그는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다. 180-185년경, 그는 위대한 저작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을 집필했다. 특히 영지주의를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 세계를 악하다고 가르쳤다. 창조주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 열등한 신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실제로 육신을 입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레니우스는 명확하게 반박했다. 창조는 선하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참으로 사람이 되셨다. 구원은 영혼만의 탈출이 아니라 온 인간의 구속이다.
그는 리옹 교회를 재건했다. 순교자들을 기념했다. 그들의 신앙을 전승했다. 교회는 다시 성장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레니우스도 나중에 순교했다고 한다. 202년경의 박해에서.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순교자들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리옹의 순교는 잊히지 않았다. 그것은 제국 전역의 교회들에 알려졌다. 블란디나의 용기, 상투스의 견인, 포티누스의 신실함이 모범이 되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테르툴리아누스가 곧 쓸 이 말이 리옹에서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14장: 북아프리카의 순교자들
카르타고 교회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 특히 카르타고(현재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근처)에는 활기차고 열정적인 교회가 있었다. 2세기 말에 이르러 카르타고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중요한 그리스도교 중심지가 되었다.
카르타고는 역사가 깊은 도시였다. 기원전 814년 페니키아인들이 세웠다. 한니발의 도시. 한때 로마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다.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 끝에 기원전 146년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재건을 명령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식민지로 재건되었다. 1세기에는 로마 아프리카 속주의 수도가 되었다. 항구 도시로 무역이 번성했고, 인구도 급속히 증가했다.
복음이 어떻게 카르타고에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로마나 소아시아에서 온 상인들, 군인들, 혹은 노예들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2세기 중반에는 이미 조직된 교회가 존재했다.
북아프리카 교회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열정적이고, 엄격하고, 타협하지 않았다. 순교를 영광으로 여겼다. 이 정신은 후에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을 낳을 것이다.
스킬리 순교자들 (180년)
180년 7월 17일,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작은 마을 스킬리움에서 열두 명의 그리스도인이 체포되었다. 남자 일곱 명과 여자 다섯 명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스페라투스(Speratus), 나르잘루스(Nartzalus), 치티누스(Cittinus), 베투리우스(Veturius), 펠릭스(Felix), 아킬리누스(Aquilinus), 라이탄투스(Laetantius), 그리고 여성들 - 야누아리아(Januaria), 제네로사(Generosa), 베스티아(Vestia), 도나타(Donata), 세쿤다(Secunda).
그들은 카르타고로 압송되어 총독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앞에 섰다. 180년 7월 17일의 일이었다.
놀랍게도 이 재판의 기록이 보존되었다. "스킬리 순교자 행전(Acta Martyrum Scillitanorum)"이라는 짧은 문서다. 이것은 라틴어로 쓰인 최초의 그리스도교 문서 중 하나이며, 실제 법정 기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 기록은 간결하고 극적이다.
총독 사투르니누스: "너희가 평화로운 로마인들의 관습으로 돌아온다면 우리 주 황제의 자비를 얻을 수 있다."
스페라투스: "우리는 악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불의에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나쁜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당하게 대우받을 때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황제를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총독: "우리도 종교적이다. 우리의 종교는 단순하다. 우리는 우리 주 황제의 천재성(genius)을 두고 맹세하고 그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너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스페라투스: "만일 당신이 조용히 들어주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단순함의 신비를 말하겠습니다."
총독: "나는 우리의 종교를 비방하려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 오히려 우리 주 황제의 천재성을 두고 맹세하라."
스페라투스: "나는 이 세상의 제국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보지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어떤 인간도 볼 수 없는 분을. 나는 도둑질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사든 세금을 냅니다. 왜냐하면 나의 주님은 모든 왕들의 왕이요 모든 민족들의 황제이시기 때문입니다."
총독 (다른 이들에게): "이 광신에서 그만두어라."
스페라투스: "살인하라, 거짓 증언하라는 가르침이 나쁜 가르침입니다."
총독: "우리의 신성한 의식에 참여하지 말라."
스페라투스: "나는 이 세상의 제국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총독이 다른 순교자들에게 물었다.
치티누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두려워할 이가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
도나타: "황제에게는 황제의 것을,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것을 드립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 존경은 황제에게."
베스티아: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쿤둘루스: "내가 있는 것, 그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즉,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인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펠릭스: "나는 그리스도인이며, 황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총독이 스페라투스에게 다시 물었다.
총독: "너는 생각할 시간을 원하는가?"
스페라투스: "이렇게 정의로운 문제에서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총독: "우리의 의식은 무엇인가?"
스페라투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외함입니다."
총독: "나도 종교적이다. 내 종교는 단순하다. 나는 우리 주 황제의 천재성을 믿는다."
스페라투스: "나는 이 세상의 제국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깁니다. '어떤 사람도 보지 못했고 볼 수 없는 분'(디모데전서 6:16)을."
총독이 회유를 시도했다.
총독: "생각할 시간 30일을 주겠다."
스페라투스: "이렇게 정의로운 문제에서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총독이 나머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모두가 같은 고백을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으로 남기를 원한다고.
총독 사투르니누스가 판결문을 낭독했다.
총독: "스페라투스, 나르잘루스, 치티누스, 도나타, 베스티아, 세쿤다, 그리고 나머지는 로마식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 의식을 고백했으므로, 그리고 더욱이 경건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었음에도 완고하게 지속했으므로, 칼로 처형되어야 한다고 결정한다."
스페라투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의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나르잘루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치티누스: "오늘 우리가 순교자가 되기를 기뻐합시다.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모두 참수되었다. 스킬리 순교자들은 북아프리카 최초의 기록된 순교자들이 되었다.
이 짧은 기록은 놀라운 것들을 보여준다. 순교자들의 담대함, 타협하지 않는 신앙,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충성. 그리고 죽음 앞에서의 기쁨.
"오늘 우리는 하늘의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관점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상의 삶의 종료가 아니라 천국의 삶의 시작이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 (203년)
가장 유명하고 감동적인 순교 이야기 중 하나가 20여 년 후 같은 카르타고에서 일어났다.
세베루스 황제(Septimius Severus, 193-211 재위)가 202년에 칙령을 내렸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로의 개종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국의 종교적 통일을 원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거나 유대인인 자들은 괜찮았다. 그러나 새로 개종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이 칙령은 특히 초신자들, 즉 세례 준비자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직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준비 중이었다. 가장 취약한 집단이었다.
203년, 카르타고에서 다섯 명의 초신자가 체포되었다.
- 레보카투스(Revocatus): 노예
-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자유민
- 세쿤둘루스(Secundulus): 젊은이
- 펠리키타스(Felicitas): 노예 여성, 임신 8개월
- 페르페투아(Perpetua): 22세의 귀족 여성
페르페투아는 특별한 인물이었다. 비비아 페르페투아(Vibia Perpetua)가 그녀의 전체 이름이었다. 그녀는 잘 교육받은 귀족 가정 출신이었다. 결혼했고 갓난아기가 있었다. 아마 생후 몇 개월 된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 수유 중이었다.
그녀에게는 두 형제가 있었고, 어머니가 살아있었다. 아버지는 이교도였고 딸을 매우 사랑했다.
펠리키타스는 노예였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페르페투아의 노예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다.
이들에게는 두 명의 교사이자 멘토가 있었다. 사투루스(Saturus)와 사투르니누스였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체포된 동료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페르페투아의 일기
놀랍게도 페르페투아는 감옥에서 일기를 썼다. 그 일기가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순교록(Passio Sanctarum Perpetuae et Felicitatis)"이라는 문서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초대 교회 문서 중 가장 귀중한 것 중 하나다. 여성이 쓴 최초의 그리스도교 문서 중 하나다. 그리고 순교자 자신이 직접 쓴 것이다. 그것은 순교자의 내면세계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문서는 편집자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의 오래된 예들이 인간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기록되었다면, 똑같은 목적으로 새로운 예들도 기록되어야 한다... 성령의 새로운 은사들도 마지막 때에 약속되었으므로, 우리는 이것들을 기록하고 독서를 통해 기념함으로써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페르페투아의 일기가 시작된다.
체포와 첫 날들
페르페투아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가 아직 박해자들과 함께 있을 때, 나의 아버지가 말로 나를 넘어뜨리려 하여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포기하라고. 배교하라고. 살라고.
"나는 말했다. '아버지, 저기 놓인 것, 물병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보이십니까?' 그가 말했다. '보인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것을 그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있는 것,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이고 명확한 대답이었다. 교육받은 여성의 대답이었다. 사물은 그 본질로 정의된다. 물병을 다른 것이라 부를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을 다른 것이라 부를 수 없다.
아버지는 분노했다. 그러나 곧 떠났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나는 그가 없어서 주님께 감사했고, 그의 부재로 위로받았다."
그들이 세례를 받은 것도 이 기간이었다. 성령이 페르페투아에게 말했다. 세례의 물에서 육체의 고통이 아닌 다른 것을 구하지 말라고. 인내를 구하라고.
어두운 감옥
"며칠 후 우리는 감옥에 갇혔다. 나는 겁이 났다. 나는 그런 어둠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페르페투아는 귀족이었다. 밝고 넓은 저택에서 살았다. 하인들이 시중들었다. 이제 그녀는 어둡고 더럽고 붐비는 감옥에 있었다.
"오, 끔찍한 날! 군중 때문에 무서운 열기가 있었다. 군인들의 거친 취급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아기 걱정에 고민했다."
그러나 두 집사, 테르티우스와 폼포니우스가 돈을 주고 그들을 감옥의 더 나은 구역으로 옮겼다.
"그때 감옥은 나에게 궁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어떤 곳보다 거기 있기를 원했다."
아기가 그녀에게로 왔다. 그녀는 수유할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형제가 나를 위로하러 왔고, 나는 그들에게 아기를 맡겼다. 나는 그들이 나 때문에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괴로워했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나는 여러 날 동안 불안해했다. 나는 아기가 감옥에서 나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허락받았고, 즉시 나는 건강을 회복했고 고통과 아기에 대한 염려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감옥은 갑자기 나에게 궁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어떤 곳보다 거기 있기를 원했다."
첫 번째 환상 - 천국의 사다리
페르페투아의 형제가 그녀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누이여, 당신은 지금 큰 존엄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환상을 요청할 만큼 충분히 위대합니다. 고난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석방될 것인지 보여달라고 요청하십시오."
페르페투아는 주님을 신뢰했기에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밤 환상을 보았다.
"나는 하늘까지 닿는 놀라운 높이의 청동 사다리를 보았다. 그러나 좁아서 한 번에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었다. 사다리의 양쪽에는 모든 종류의 철제 무기가 고정되어 있었다. 검, 창, 갈고리, 단도가 있어서, 부주의하게 올라가거나 위를 보지 않으면 찢기고 살이 그 무기에 걸렸다. 사다리 아래에는 거대한 용이 누워 있었는데, 올라가는 자들을 매복하여 그들이 올라가는 것을 두렵게 했다."
사투루스가 먼저 올라갔다. 그는 자발적으로 자수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정상에 도달하여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페르페투아,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용이 당신을 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나는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것은 나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용은 사다리 아래에서 마치 나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천천히 머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내가 첫 번째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그 머리를 밟았다."
용을 밟는다. 창세기 3:15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나는 올라가서 광대한 정원을 보았다. 그 한가운데 흰 머리의 키 큰 남자가 목자의 옷을 입고 앉아 있었고, 양들에게 젖을 짜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흰 옷을 입은 수천 명이 서 있었다."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순교자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가 머리를 들어 나를 보고 말했다. '잘 왔다, 자녀여.' 그는 나를 불러 그가 짜고 있던 젖에서 한 입을 주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받아먹었다. 둘러선 모든 이가 '아멘'이라고 말했다. 그 말소리에 나는 깨어났고, 아직도 입에 무언가 달콤한 것을 맛보고 있었다."
페르페투아가 형제에게 이 환상을 말했다. 그들은 이제 고난을 받을 것이고, 세상의 희망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소식이 아니었다. 천국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한 목자께서 그들을 환영하실 것이었다.
아버지의 간청
며칠 후 소문이 퍼졌다. 그들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페르페투아의 아버지가 도시에서 왔다. 근심으로 지쳐 있었다.
"그는 나를 설득하려고 올라왔다. 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말이다. 그는 말했다. '딸아, 나의 흰 머리를 불쌍히 여겨라. 네 아버지를 불쌍히 여겨라. 만일 내가 네 손으로 네가 젊음의 꽃에 이르도록 키울 자격이 있었다면. 만일 내가 네 모든 형제들보다 너를 선호했다면. 나를 사람들의 경멸거리로 만들지 마라.'"
절박한 호소였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간청이었다.
"'네 형제들을 보라, 네 어머니와 이모를 보라, 네 아들을 보라. 네가 죽으면 그가 살 수 없을 것이다. 너의 교만을 버려라. 우리를 파멸시키지 마라. 만일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중 아무도 자유롭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손에 입맞추었다. 눈물을 흘렸다.
페르페투아의 마음이 찢어졌다.
"나는 그를 위해 슬펐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고난을 기뻐할 수 없는 온 가족 중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위로하려 했다. "재판대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아버지는 슬픔 속에 떠났다.
재판
그들은 광장으로 끌려갔다. 소문이 퍼져 군중이 모였다. 그들은 총독의 단상 앞에 섰다. 총독은 힐라리아누스(Hilarianus)였다.
다른 이들이 먼저 심문받았다. 모두 고백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페르페투아의 차례가 왔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는 나를 단상에서 끌어내리며 애원했다. '제사를 드려라! 아기를 불쌍히 여겨라!'"
총독 힐라리아누스도 말했다. "네 아버지의 흰 머리를 아껴라. 네 어린 아기를 아껴라. 황제들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드려라."
페르페투아가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냐?"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버지가 계속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총독이 명령했다. "저 노인을 끌어내고 막대기로 쳐라."
군인들이 페르페투아의 아버지를 때렸다. 페르페투아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버지의 불행을 나 자신이 맞은 것처럼 느꼈다. 나는 그의 비참한 노년을 위해 슬펐다."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총독이 그들 모두에게 선고했다. 맹수들에게 던져지는 형벌. 그들은 기뻐하며 감옥으로 돌아갔다.
페르페투아는 즉시 집사에게 아기를 데려오라고 보냈다. 그녀는 수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기를 주기를 거부했다. "놀랍게도 아기는 더 이상 가슴을 원하지 않았고, 내 가슴도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기에 대한 걱정이나 가슴의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아기가 자연스럽게 젖을 뗀 것이다. 페르페투아가 순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두 번째 환상 - 동생 디노크라테스
페르페투아의 한 형제가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환상을 요청하라고. 순교가 가까운지 알기 위해.
그날 밤 페르페투아는 다른 환상을 보았다. 이번에는 죽은 동생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나의 동생 디노크라테스(Dinocrates)가 어두운 장소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는 매우 뜨거워하고 목말라하며 더럽고 창백했다. 그의 얼굴에는 그가 죽었을 때 가졌던 상처가 있었다."
디노크라테스는 7세에 얼굴의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는 닿을 수 없는 물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려 했다. 나는 슬펐다. 그가 목말라하는데 마실 수 없는 것을 보며."
페르페투아가 깨어났다. 그녀는 동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밤낮으로 신음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그가 내게 주어지기를."
며칠 후 다른 환상을 보았다.
"나는 전에 본 그 장소를 보았다. 디노크라테스가 깨끗한 몸과 잘 입은 옷으로 상쾌해하는 것을 보았다. 상처가 있던 곳에 흉터가 있었다. 내가 본 그 웅덩이의 물이 가장자리까지 내려와 있었고, 거기에 금으로 된 그릇이 끊임없이 물로 가득 채워졌다. 디노크라테스가 가까이 와서 그릇에서 마시기 시작했고, 그릇은 비지 않았다. 물을 충분히 마신 후 그는 기쁘게 놀러 갔다. 그때 나는 깨어났고 그가 고통에서 구출되었음을 알았다."
이 환상은 초대 교회가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믿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페르페투아의 깊은 가족애를 보여준다.
세 번째 환상 - 이집트인과의 싸움
처형 전날, 페르페투아는 세 번째 환상을 보았다.
집사 폼포니우스가 감옥 문을 두드렸다. 페르페투아가 나가자 그가 말했다. "페르페투아, 우리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오십시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원형경기장으로 데려갔다.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맹수에게 던져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이집트인이 나와 싸우려고 나오는 것을 궁금해했다. 그는 외모가 추하고 그의 조력자들과 함께였다."
페르페투아에게도 조력자들이 왔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었다.
"나의 옷이 벗겨지고 나는 남자가 되었다." (여성이 경기장에서 싸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조력자들이 그녀에게 기름을 발랐다. 운동선수들이 하듯이.
"그 이집트인이 반대편에서 모래 위에 구르고 있었다."
키가 크고 놀라운 남자가 나타났다. 경기를 주재하는 심판이었다. 그는 녹색 가지와 금사과들을 들고 있었다. 승자에게 줄 상품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와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 발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발뒤꿈치로 쳤다. 나는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치 땅을 밟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의 머리를 밟았다."
그녀가 이겼다.
"심판이 나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며 말했다. '딸아, 평화가 너와 함께.' 그리고 나는 영광의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깨어났다."
페르페투아는 이해했다. "나는 맹수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마와 싸울 것이고, 나는 이길 것이다."
이것이 페르페투아의 일기가 끝나는 곳이다.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것이 내가 경기일 전날까지 한 일이다. 경기 자체에 대해서는 원하는 자가 쓸 것이다."
사투루스의 환상
교사이자 멘토였던 사투루스도 환상을 보았고 기록했다.
그는 순교자들이 천사들에게 이끌려 동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빛나는 들판에 도착했다. 거기에 장미 나무들과 온갖 꽃들이 있었다.
큰 정원에 이르렀다. 가운데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흰 머리에 젊은 얼굴. 그의 발치에는 24명의 장로가 있었다. (요한계시록의 환상)
천사들이 그들을 데려와 말했다. "들어가 주님께 인사하라."
그들이 들어가 그분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분이 손으로 그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장로들이 말했다. "나가서 놀아라." (이제 고난이 끝났다는 의미)
사투루스가 말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다른 순교자들을 만났다. 특히 오피아투스와 오타비우스라는 감독들을. 그들도 같은 박해에서 순교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투루스가 리옹과 비엔나의 순교자들도 본 것이다. 그들이 주님께 교회의 분쟁에 대해 중재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펠리키타스의 출산
한편 펠리키타스는 큰 근심에 있었다. 그녀는 임신 8개월이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임신한 여자는 처형될 수 없었다. 출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펠리키타스는 두려워했다.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지 못할까봐. 그들은 같은 날, 같은 희망으로 순교하기를 원했다.
처형 이틀 전, 그들은 함께 기도했다. 펠리키타스를 위해.
기도 후 즉시 산통이 시작되었다. 8개월 임신이라 고통이 컸다.
한 간수가 조롱하며 말했다. "네가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맹수들에게 던져질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펠리키타스가 대답했다. "지금은 내가 고통받고 있지만, 거기서는 다른 이가 내 안에서 나를 위해 고통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을 위해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딸을 낳았다. 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아기를 입양했다.
이제 펠리키타스는 준비되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순교할 수 있었다.
편집자는 이렇게 썼다. "그리하여 그녀는 출산에서 경기장으로, 피에서 피로, 산파에서 검투사로 갔다. 두 번째 세례로 출산의 씻김을 씻으려고."
마지막 밤
처형 전날 밤, 그들에게 "자유로운 만찬"이 주어졌다. 관습상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이것을 애찬(agape), 즉 사랑의 잔치로 바꿨다.
군중이 그들을 보러 모였다. 구경거리를 보러.
순교자들이 군중에게 말했다. 담대하게, 기쁘게.
사투루스가 한 군중에게 말했다. "너는 오늘 우리를 지켜본다. 내일 우리는 너를 지켜볼 것이다." (심판날에)
사람들이 화를 냈다. 총독에게 채찍질을 요구했다.
순교자들은 기뻐했다. 그들은 주님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게 되었으므로.
처형일 - 원형경기장
경기일이 밝았다. 순교자들이 감옥에서 원형경기장으로 걸어갔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것처럼 기쁜 얼굴로, 차분한 걸음으로. 만일 떨고 있었다면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였다."
페르페투아가 먼저 나왔다. "하나님의 참된 배우자로,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자로, 확고한 시선으로, 그녀의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모든 이의 눈을 압도하며."
펠리키타스는 그녀를 따랐다. "출산에서 기뻐하며, 피에서 피로 씻김받아, 산파에서 검투사로."
다른 이들도 뒤따랐다. 레보카투스, 사투르니누스, 사투루스.
당국은 그들에게 이교 제사장의 옷을 입히려 했다. 남자들에게는 사투르누스 신의 제사장 옷을, 여자들에게는 케레스 여신의 옷을.
페르페투아가 저항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것에 동의했고 당신들과 계약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주었고 당신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의가 불의를 인정했다. 군사 호민관이 그들이 평범한 옷을 입도록 허락했다.
페르페투아가 찬송을 부르며 걸었다. 이미 그리스도의 발 아래 원수의 머리를 밟고 있는 것처럼.
맹수들
레보카투스, 사투르니누스, 사투루스가 먼저 나갔다. 표범, 곰, 멧돼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투루스는 멧돼지를 두려워했지만, 오히려 표범이 그를 공격했다. 한 번에 그는 피로 뒤덮였다.
군중이 조롱하며 외쳤다. "구원받았다! 잘 씻었다!" (세례를 조롱하는 것)
사투루스가 대답했다. "진실로 이것은 나의 구원이다!"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폼포니우스 군병에게 말했다. "깨어나라. 그리고 내가 예언한 것을 기억하라. 아직까지 어떤 짐승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때 표범이 다시 풀렸고, 사투루스는 한 번의 물림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죽어가고 있었다.
여자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를 위해 미친 암소가 준비되었다. 여자들에게는 부드러운 짐승이 아니라 특별히 사나운 것을 준비한 것이었다.
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그물에 씌워졌다. 나체로.
그러나 군중조차 소름 끼쳤다. 한 명은 아직 젊은 여자요, 다른 한 명은 방금 출산한 여자였다. 가슴에서 아직 젖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불려 나가 느슨한 옷을 입혀졌다.
페르페투아가 먼저 던져졌다. 암소가 받아 공중으로 던졌다. 그녀가 땅에 떨어졌을 때 옆구리에 멍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나 앉았다. 찢어진 튜닉을 보고 그것을 당겨 옆구리를 가렸다. "창피보다 품위에 더 신경 쓰며."
그녀는 머리핀을 요청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순교자는 슬퍼해서는 안 되니까. 머리를 푼 것은 애도의 표시였으니까.
그녀가 일어나 펠리키타스가 쓰러진 것을 보고 가서 손을 내밀어 일으켰다.
그들은 함께 섰다. 군중의 무자비함이 만족되어 그들은 살라마리아 문으로 불렸다. (살아남은 검투사들이 나가는 문)
거기서 루스티쿠스라는 초신자가 페르페투아를 지지했다. 그녀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물었다. "언제 우리를 암소에게 던질 것인가?"
그녀가 이미 당한 것을 들었을 때 믿지 않았다. 몸과 옷의 상처를 볼 때까지.
그녀는 형제 초신자들을 불러 말했다. "믿음 안에 굳게 서고, 서로를 사랑하며, 우리의 고난으로 인해 흔들리지 마십시오."
마지막 - 칼
사투루스는 다른 문에 있었다. 병사 푸덴스에게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말하고 예언한 것처럼, 지금까지 어떤 짐승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제 나를 믿으라. 온 마음으로. 보라, 나는 나가서 표범 한 번의 물림으로 끝날 것이다."
즉시 경기가 끝날 때 그는 표범에게 던져졌고 한 번의 물림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려 군중이 그가 물러갈 때 외쳤다. "잘 씻었다! 잘 씻었다!"
사투루스가 피로 뒤덮인 병사 푸덴스에게 말했다. "안녕히, 믿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나를 기억하라. 이것이 너를 동요시키지 않고 오히려 확신시키게 하라."
그리고 그의 반지를 요청했다. 상처에 담가 피 묻은 반지를 푸덴스에게 돌려주었다. 유산이자 기념물로.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군중이 요구했다. 그를 끝내기 위해.
이제 칼의 시간이었다. 관습상 검투사들은 원형경기장 중앙에 모여 칼로 처형되었다.
군중이 요구했다. 그들의 눈으로 살인을 보기 위해.
순교자들은 스스로 일어나 장소로 갔다. 군중이 원하는 곳으로.
그들은 서로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했다. 순교를 완성하기 위해.
다른 이들은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검을 받았다.
사투루스가 먼저 갔다. 그는 페르페투아를 격려한 사람이었으므로.
페르페투아는 젊은 검투사에게 배정되었다. 그의 손이 떨렸다. 첫 번째 칼이 뼈 사이를 맞혔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 스스로 떨리는 검투사의 오른손을 잡아 자신의 목으로 인도했다.
편집자는 이렇게 끝맺는다. "아마도 이렇게 위대한 여자는 달리 죽임을 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부정한 영에게 두려움을 주었기에."
유산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순교는 초대 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북아프리카 교회에.
그들의 순교록은 널리 읽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세기에 이것에 대해 설교했다. 그는 페르페투아의 용기를 칭찬하며 말했다. "그녀는 여자의 연약함을 극복했고, 남자가 부끄러워할 용기를 보였다."
카르타고에 그들을 기념하는 바실리카가 세워졌다. 매년 3월 7일이 그들의 축일이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러 측면에서 놀랍다.
첫째, 여성의 목소리다. 페르페투아의 일기는 여성이 직접 쓴 초대 교회 문서다. 그녀의 내면 세계, 감정, 영적 경험을 직접 듣는다.
둘째, 인간적 갈등이다. 페르페투아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기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더 사랑했다. 그 갈등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셋째, 여성의 힘이다. 귀족 여성과 노예 여성이 함께 순교했다. 사회적 신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의미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용기는 남성들을 능가했다.
넷째, 환상과 영성이다. 페르페투아의 환상들은 초대 교회의 영성을 보여준다. 사다리, 선한 목자, 이집트인과의 싸움. 모두 깊은 상징성을 가진다.
다섯째, 모성이다. 펠리키타스는 출산 직후 순교했다. 페르페투아는 수유 중이던 아기를 남겼다. 모성과 순교, 생명을 주는 것과 생명을 바치는 것이 겹쳐진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이 말은 특히 진실이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키타스의 피에서 강력한 교회가 자랐다. 테르투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를 낳은 교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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