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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신학/교회이야기

초대교회의 박해와 순교 2부

by 사카린스마일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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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확산되는 복음과 박해 (50-100년)

5장: 바울의 여정과 고난

첫 번째 선교여행의 박해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선교여행을 떠났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이 회당에서 설교하자 많은 사람이 믿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충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냈다."

루스드라에서는 더 심한 일이 일어났다. 바울이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다. 군중들이 그를 신이라 여겼다. 바울과 바나바는 간신히 그들을 말렸다.

그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와서 무리를 충동했다. 그들은 바울을 돌로 쳐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냈다.

제자들이 그를 둘러섰다. 바울이 일어났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빌립보의 감옥

두 번째 선교여행 중,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쳤다. 그 여종의 주인들은 이득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리들에게 끌고 갔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군중이 그들을 공격했다. 상관들이 그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하라 명령했다.

채찍이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계속. 얼마나 맞았는지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이 친 후에"라고 성경은 말한다. 등이 찢어졌다. 피가 흘렀다.

그들은 옥에 갇히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다. 고통스러운 자세였다. 상처는 치료받지 못했다. 어둠과 고통과 불편함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들은 노래했다. 고통 속에서, 어둠 속에서, 불의 속에서. 그들의 찬송 소리가 감옥에 울려 퍼졌다. 다른 죄수들이 들었다. 아마 놀랐을 것이다. 저들은 무엇이 다른가?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풀렸다.

간수가 깨어나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아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쳤다.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날 밤 간수와 그의 온 집이 세례를 받았다. 그는 그들을 데려다가 그 상처를 씻어 주고 음식을 차려 주었다.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했다.

박해가 구원을 낳았다. 매가 찬송을 낳았다. 감옥이 교회가 되었다.

고린도에서의 위협

고린도에서 바울이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총독 갈리오에게 끌고 갔다.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바울이 입을 열려 할 때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하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율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다. 갈리오의 이 판결은 중요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로 간주되어 로마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에베소의 소동

에베소에서 바울이 2년 동안 전도하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책들을 모아 불살랐다. 그 책값이 은 오만 냥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은으로 아데미 신상을 만들던 데메드리오가 동업자들을 모았다.

"여러분,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서 되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체를 통하여 사람들을 충동하여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고 듣습니다!"

군중이 분노했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고 외치며 극장으로 몰려갔다. 바울의 동행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끌고 갔다.

바울이 가려 했으나 제자들이 말렸다. 아시아의 관리 중 몇 사람도 바울에게 사람을 보내어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간청했다.

소동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켰다.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규 집회에서 결정할지라."

이렇게 바울은 다시 한번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예루살렘에 가면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루살렘에서의 체포

서기 57년경,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야고보와 장로들이 경고했다.

"형제여,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는데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그들이 당신에 대하여 들은즉 당신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풍속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하니..."

바울은 그들의 조언에 따라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성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온 무리를 충동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온 성이 소동했다. 그들이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며 문을 닫았다.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로마 군대의 천부장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천부장이 군인들을 이끌고 달려가자 그들이 바울 치기를 그쳤다. 천부장이 그를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령했다.

군중이 소리쳤다. "없애 버려라!" 소동이 너무 커서 군인들이 바울을 들어서 영문 안으로 옮겨야 했다.

산헤드린 앞에서

다음 날 천부장이 바울을 산헤드린 앞에 세웠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며 말했다.

"여러분 형제들이여,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 왔노라."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입을 치라 명령했다.

바울이 말했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곁에 선 사람들이 말했다.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느냐?"

바울이 지혜롭게 대답했다.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했노라."

그리고 공회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섞여 있는 것을 보고 외쳤다.

"여러분 형제들이여, 나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부활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이 말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고 주장했다.

소동이 크게 일어나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두려워하여 군인들에게 내려가 그를 그들 가운데서 빼앗아 영문 안으로 가져가라 명령했다.

주님의 위로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이 말씀이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는 로마까지 갈 것이다. 주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암살 음모

날이 새자 유대인들이 결사대를 조직했다. 40명 이상이 맹세하기를,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했다.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했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당신들에게 데려오게 하십시오.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죽일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생질이 이 음모를 듣고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렸다. 바울이 백부장 하나를 불러 말했다.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 데리고 가라. 그에게 전할 것이 있다."

천부장이 청년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물었다. "내게 전할 것이 무엇이냐?"

청년이 음모를 자세히 알렸다.

가이사랴로의 이송

천부장은 즉시 결정했다. 그날 밤 제삼시에 보병 200명, 마병 70명, 창병 200명을 준비시켜 바울을 가이사랴 총독 벨릭스에게 호송하도록 했다.

바울은 밤을 타 예루살렘을 떠났다. 470명의 로마 군인이 한 사람의 죄수를 호위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이며 그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은 다시 심문받았다. 유대인들이 고발했다.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나이다."

바울이 변명했다. 벨릭스는 판결을 미루었다. 바울은 2년 동안 가이사랴에 구금되었다.

베스도 앞에서와 가이사에게 상소

2년 후 베스도가 총독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다시 바울을 고소했다. 베스도가 바울에게 물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받기를 원하느냐?"

바울이 대답했다. "나는 가이사의 재판정 앞에 서 있으니 여기서 심문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이다. 내가 유대인들에게 아무 해도 끼친 일이 없는 줄은 당신도 잘 아시는 바라.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였거나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로 갈 것이라." 베스도가 선언했다.

이것이 바울이 원했던 것이었다. 로마로 가는 길이 열렸다.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6장: 네로의 광기 - 로마의 대화재

64년 7월의 밤

서기 64년 7월 18일 밤, 로마에 불이 났다. 키르쿠스 막시무스 근처의 상점가에서 시작된 작은 불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었고 불은 빠르게 번졌다.

로마는 목조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였다. 좁은 골목길, 바짝 붙은 건물들. 완벽한 화재의 조건이었다.

불은 엿새 동안 타올랐다. 로마의 14개 구역 중 3개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7개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수천 명이 집을 잃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황제 네로는 화재 당시 안티움에 있었다.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그는 구호 활동을 지휘했다. 이재민들을 위해 마르스 광장과 자신의 정원을 개방했다. 곡물 가격을 낮추었다.

그러나 소문이 퍼졌다. 네로가 불타는 로마를 보며 리라를 타고 시를 읊었다는 것. 네로가 로마를 재건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것.

역사가 타키투스는 나중에 기록할 것이다. "이 재난이 우연인지 황제의 간계인지 확실하지 않다."

네로는 위기를 느꼈다. 백성들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고발

네로의 측근들이 제안했다. "그리스도인들을 고발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완벽한 희생양이었다. 그들은 소수였고, 다르게 살았다.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 은밀하게 모였다. 형제자매라 부르며 서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몸과 피를 먹는다고 했다(성찬식에 대한 오해).

로마 백성들은 그들을 싫어했다. "인류의 적"이라고 불렀다. 미신을 믿는 자들, 사회를 거부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네로는 선언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를 불태웠다!"

체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소수가 잡혔다. 그들이 고문받고 다른 이들의 이름을 댔다. (혹은 강요당해 거짓으로 이름을 댔다). 연쇄 체포가 이어졌다. 수백 명이, 어쩌면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타키투스는 기록했다. "처음에는 자백한 자들이 체포되었고, 다음에는 그들의 정보로 막대한 무리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방화죄보다는 인류에 대한 증오로."

순교의 방법들

네로의 박해는 단순한 처형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펙타클이었다. 구경거리였다. 오락이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야생 동물의 가죽을 입혀졌다. 그리고 원형경기장에 풀어놓은 맹수들에게 던져졌다.

사자가 달려들었다. 이빨이 살을 찢었다. 발톱이 찢어발겼다. 비명이 들렸다. 피가 모래를 적셨다. 군중이 환호했다.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주님처럼. 십자가들이 줄지어 세워졌다. 로마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경고였다. 이것이 로마를 거역하는 자들의 운명이라는.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밤의 구경거리였다.

네로는 자신의 정원에서 연회를 열었다. 어둠이 내렸다. 그러자 정원에 빛이 켜졌다. 그러나 그것은 횃불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들의 몸에 기름과 송진이 발라져 있었다. 불이 붙었다.

산 채로 타는 사람들의 비명이 밤하늘을 갈랐다. 그러나 연회는 계속되었다. 네로는 전차를 타고 그 사이를 누볐다. 산 사람 횃불의 빛으로 밝혀진 정원에서.

타키투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의 죽음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맹수의 가죽을 입혀져 개들에게 찢겨 죽었고,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날이 저물면 횃불처럼 불태워져 밤의 조명이 되었다."

그러나 타키투스는 덧붙였다. "비록 그들이 범죄자들이고 극형을 받을 만하다 해도, 사람들은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공공의 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잔혹함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거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담대함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며 찬송을 불렀다. 맹수들에게 찢기면서 기도했다. 불길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렀다.

한 로마 군인이 동료에게 물었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드는가? 무엇이 저들에게 죽음보다 강한 확신을 주는가?"

"그들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믿는다네." 동료가 대답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이네.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만약 그들이 옳다면..."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씨앗은 심어졌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증언이었다. 말보다 강한 증언.


7장: 베드로 -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

로마의 베드로

베드로는 언제 로마에 왔는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60년대 초반.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기 전.

로마 교회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57년경) 이미 로마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오순절에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행전 2장). 그들이 돌아가 교회를 세웠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들 사이에서 목자로 섬겼다. 한때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어부.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번 받고,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세 번 받은 사도.

그는 로마의 양들을 먹였다. 가르쳤다. 격려했다. 박해가 시작되자 그들과 함께 고난을 받았다.

도피의 결정

64년 여름, 네로의 박해가 극심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리에서 체포되었다. 집집마다 수색이 들어왔다. 매일 십자가가 세워지고, 맹수가 풀려났고, 사람들이 불태워졌다.

로마 교회의 신자들이 베드로에게 간청했다.

"떠나십시오, 베드로! 당신은 교회의 반석입니다. 당신이 죽으면 누가 우리를 인도합니까?"

"나는 양들을 버릴 수 없네."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님께서도 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필요 없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지혜롭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갈등했다.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때 주님께 맹세했다. "주여, 나는 주와 함께 감옥에도 가고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그러나 주님은 대답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 할 것이라."

그리고 그 예언대로 되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다. 세 번.

이제 상황이 다시 왔다. 용기를 보일 기회가. 부인을 만회할 기회가. 그런데 제자들이 그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베드로는 기도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결정했다. 로마를.

쿼 바디스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새벽녘, 베드로는 은밀히 로마를 빠져나왔다. 아피아 가도를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마음은 무겁고 발걸음은 느렸다.

'이것이 옳은가?' 그는 자문했다. '양들을 두고 목자가 도망치는 것이 옳은가?'

그러나 계속 걸었다. 해가 떠올랐다. 로마가 멀어졌다.

갑자기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침 햇살이 그 형상을 비췄다. 베드로는 멈춰 섰다. 심장이 뛰었다.

그것은 예수님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계셨다. 예루살렘을 향해, 골고다를 향해 걸어가시던 그날처럼.

베드로는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입술이 떨렸다.

"도미네, 쿼 바디스? (Domine,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프고, 부드럽고, 단호한 목소리.

"쿼 투 레링퀴스 포풀룸 메움, 에고 로맘 베니오 이테룸 크루시피기. (Quo tu relinquis populum meum, ego Romam venio iterum crucifigi.) 네가 나의 백성을 버리니, 나는 로마에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노라."

베드로의 가슴이 찢어졌다. 그는 이해했다.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었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버리는 것은 주님을 버리는 것이었다.

"주여..." 베드로가 울부짖었다. "주여, 용서하소서."

그는 일어섰다.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돌아섰다. 로마를 향해. 죽음을 향해.

걸음은 이제 가벼웠다. 마음은 평화로웠다. 마침내 그는 알았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양을 먹이는 방법이라는 것을.

체포와 심문

베드로가 로마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곧 당국에 전해졌다. 그는 체포되었다.

마메르티네 감옥. 로마의 가장 오래된 감옥. 지하 깊은 곳의 어두운 구덩이. 그곳에 베드로가 갇혔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서 베드로가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프로세수스와 마르티니아누스라는 두 간수가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물이 없었으므로 베드로가 기도하자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진실이든 전설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베드로는 마지막까지 목자였다. 감옥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로마 관리들이 그를 심문했다.

"네가 베드로라는 자냐? 그리스도인들의 지도자?"

"나는 베드로라 하는 시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황제께 제사를 드리겠느냐?"

"나는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경배합니다."

"그렇다면 너는 반역자다. 사형을 선고한다. 십자가형."

베드로는 담대히 대답했다. "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

처형 날이 왔다. 베드로는 십자가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바티칸 언덕, 네로의 경기장 근처였다.

전설에 따르면, 베드로의 아내도 함께 순교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기록했다. "그는 자기 아내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를 격려하며 '주님을 기억하라'고 외쳤다."

십자가가 땅에 놓였다. 병사들이 베드로를 눕히려 했다. 베드로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 주시오."

병사들이 멈췄다. 베드로가 간청했다.

"나는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나를 내 주님처럼 십자가에 달지 말아 주시오. 나는 그분처럼 달릴 자격이 없소. 나를 거꾸로 달아 주시오."

병사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좋다. 네 뜻대로 하지."

그들은 베드로를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 발이 위로, 머리가 아래로. 못이 손목과 발목을 관통했다.

십자가가 세워졌다. 피가 거꾸로 머리로 몰렸다. 고통이 극심했다. 숨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나 베드로는 설교했다. 십자가 위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로. 모인 군중들에게.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매달리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과 반대 방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을 향하셨으나 나는 땅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영원을 보셨으나 나는 현세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거꾸로 달려 마땅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다. 피가 계속 머리로 몰렸다. 의식이 흐려졌다.

마지막 순간, 베드로는 미소 지었다. 그는 보았다. 주님을. 팔을 벌리고 그를 맞이하시는 주님을.

"주여, 이제야... 이제야 저는 당신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잠들었다.

한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어부는, 이제 죽음으로 세 번 고백했다.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의 입술로, 그의 삶으로, 그의 죽음으로.


8장: 바울 - 사도의 마지막 여정

로마로의 항해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후, 그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백부장 율리오의 감독 하에.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했다.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다. 계절이 좋지 않았다. 바울이 경고했다.

"여러분,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재난과 큰 손실을 가져올 것입니다. 배뿐만 아니라 우리 생명도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다. 배는 계속 항해했다.

얼마 후 유라굴로라 불리는 광풍이 배를 덮쳤다. 14일 동안 폭풍이 계속되었다.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배는 표류했다. 사람들은 살 희망을 잃었다.

그때 바울이 일어나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듣고 크레데를 떠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께 권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여러분 중 아무도 생명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배만 잃을 것입니다."

"어젯밤에 내가 속한 하나님,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니,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을 네게 주셨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과연 그대로 되었다. 배는 부서졌지만 276명 전원이 무사히 멜리데(말타) 섬에 상륙했다.

로마 도착과 가택 연금

몇 달 후, 바울은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

로마의 형제들이 그를 맞으러 나왔다.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

바울은 자기 셋집에서 연금 상태로 지냈다. 그러나 자유롭게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담대히 거침없이 가르쳤다.

2년 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 바울은 그 기간에 편지들을 썼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감옥 서신들이라 불리는.

첫 번째 재판과 석방

62년경, 바울의 재판이 열렸다. 네로 황제 앞에서. 그러나 이때는 아직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전이었다.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바울에게 반역죄나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는 석방되었다.

바울은 다시 선교 여행을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에베소로, 어쩌면 마케도니아로, 어쩌면 스페인까지.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이 시기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전히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들을 임명하고, 가르쳤다.

두 번째 체포

64년 네로의 대화재와 박해가 시작되었다.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자체가 범죄가 되었다.

67년경, 바울이 다시 체포되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 재판 때처럼 자기 집에 머물 수 없었다. 마메르티네 감옥, 지하 깊은 곳에 갇혔다.

조건은 열악했다. 어둡고, 춥고, 습했다. 바울은 나이가 많았다.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디모데후서. 그의 유언과도 같은 편지.

디모데후서 - 사도의 유언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바울의 손은 추위로 떨렸다. 빛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써야 했다. 마지막 말을 전해야 했다.

"내가 이미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는 멈추고 생각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을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여정이 있었는가. 얼마나 많은 도시를, 얼마나 많은 교회를 세웠는가.

세 번의 선교 여행. 수천 킬로미터. 수없이 많은 설교. 맞은 매, 당한 돌질, 파선, 굶주림, 추위, 위험.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기쁨이 있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살았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다. 이제 그분을 위해 죽을 것이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외로움이 그의 글에 스며들었다. 많은 동역자들이 떠났다. 어떤 이는 두려움으로, 어떤 이는 다른 사역지로.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신실한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의사. 얼마나 감사한 동역자인가.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실용적인 부탁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옥은 추웠다. 늙은 몸은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책들도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책들을 가져오라."

성경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노트들? 마지막까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싶어 했다.

"나의 첫 번째 변론에서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이 허물을 받지 않기를 원하노라."

첫 번째 심문. 아무도 그를 위해 증언하러 오지 않았다. 두려워서. 당연했다.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지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바울은 그들을 용서했다. 스데반처럼, 주님처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하게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져냄을 받았느니라."

첫 번째 재판에서 주님이 그와 함께하셨다. 그래서 그는 담대히 증언할 수 있었다. 법정에서도 그는 복음을 전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상의 수고를 마치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너는 겨울 전에 오라."

마지막 부탁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제자를 보고 싶었다. 디모데를. 그의 진실한 아들을.

디모데가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편지가 늦게 도착했을지도. 어쩌면 겨울이 오기 전에 바울의 때가 이미 왔을지도.

참수형

로마 시민인 바울은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다. 대신 참수형이 선고되었다. 로마법에서 로마 시민에게 주어지는 "자비로운" 처형 방법.

전설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 남쪽 오스티아 가도의 세 분수 지역(Tre Fontane)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67년경의 일이었다.

그는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수많은 여정의 마지막 여정. 그는 걸으며 기도했을 것이다. 찬송했을 것이다.

처형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칼을 든 집행자가 뒤에 섰다.

바울은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아바, 아버지."

칼이 올라갔다.

바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분을 생각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분을.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신 그분을.

"주 예수여..." 바울이 속삭였다.

칼이 내려왔다.

순간, 바울은 자유로워졌다. 육신의 장막을 벗었다. 그리고 보았다. 마침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았다.

"주님!"

"잘했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한때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된 바울.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땅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의 영은 날아올랐다. 천국으로. 그가 그토록 사모하던 곳으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썼던 말이 이루어졌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나중에 쓸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의 피가 로마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두 사도가 거의 같은 시기에 로마에서 순교했다. 교회의 반석과 이방의 사도. 어부와 학자. 갈릴리 사람과 다소 사람. 그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곳에 도착했다. 십자가로, 죽음으로, 그리고 영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