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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신학/교회이야기

성경 정경화의 숨겨진 논쟁들 #1 : 야브네(얌니아) 회의의 긴 밤

by 사카린스마일 202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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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브네 회의의 긴 밤 - 구약 정경을 둘러싼 랍비들의 치열한 논쟁

 

 

성전이 사라진 후, 남은 것은 무엇인가?

 

 

기원후 70년 9월, 예루살렘 성전에서 마지막 제사가 드려진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로마 군단의 불길에 타버린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어요. 수백 년간 유대교의 중심이었던 제사 제도, 레위인들의 성가, 성전 뜰에 울려 퍼지던 기도소리... 모든 것이 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기원후 90년경 어느 겨울 저녁,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야브네(야므니아)에서 한 노인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관 속에 숨어 성을 빠져나온 후, 이곳에 학교를 세워 유대교 재건에 온 힘을 쏟고 있었어요.

 

"토라입니다, 선생님."

 

젊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성전도, 제사장도, 왕도 없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랍비의 눈빛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과연 어떤 책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전이 있을 때는 제사장들이 보관하고 관리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

 

그날 밤부터 시작된 논쟁은 몇 달간 계속되었습니다. 토라(모세오경)와 예언서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어요. 하지만 케투빔(성문서)의 일부 책들을 두고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에스더서 - "하나님이 없는 책을 성경이라 할 수 있는가?"

 

첫 번째 논쟁은 에스더서를 두고 일어났습니다.

 

"형제들이여,"

 

보수적인 랍비 한 명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에스더서 전체를 다시 읽어보셨습니까? 10장에 걸친 긴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도, 제사도, 종교적 의식도 전혀 언급되지 않아요. 이런 책이 어떻게 거룩한 성경이 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랍비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그저 페르시아 궁정의 세속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에스더라는 여인이 왕후가 되어 유대인들을 구했다는 것... 이게 과연 하나님의 계시입니까?"

 

세 번째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만과 그 가족 75,000명을 죽였다는 복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이 과연 토라의 자비로운 정신과 맞습니까?"

 

회의장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곧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잠깐만요, 형제들."

 

랍비 여호수아 벤 하나냐가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는 뜻입니까? 에스더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 아닙니까?"

 

그는 에스더서 두루마리를 펼치며 계속했습니다.

 

"보십시오. 와스디 왕후가 폐위되는 것,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되는 것, 모르드개가 우연히 암살 계획을 듣게 되는 것, 왕이 하필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궁중 일기를 읽는 것...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연속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

 

젊은 랍비 한 명이 손을 들었어요.

 

"그럼 부림절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이 절기의 근거가 바로 에스더서 아닙니까?"

 

"맞습니다!"

 

랍비 엘리에젤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부림절 없이 우리 달력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만이 유대인을 전멸시키려던 바로 그날이 오히려 유대인의 구원의 날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토론이 밤늦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미세한 차이로 에스더서는 정경에 포함되었어요.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 세기 후 마르틴 루터도 이 책을 "비정경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논쟁적인 책이었거든요.

 

 

전도서 -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는 책이 성경인가?"

 

두 번째 밤의 논쟁은 더욱 치열했습니다. 주제는 전도서였어요.

 

"전도서 1장부터 읽어보겠습니다."

 

한 랍비가 두루마리를 펼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그가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지나친 염세주의 아닙니까? 젊은이들이 이런 글을 읽고 절망에 빠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랍비가 더 충격적인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9장 4절을 보십시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이런 불경스러운 표현이 성경에 있어도 됩니까?"

 

세 번째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가 정말 솔로몬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문체나 어휘를 보면 훨씬 후대의 작품 같은데요. 그리스 철학의 영향도 보이고..."

 

하지만 이때 회의장 맨 뒤에서 노인 한 분이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힐렐 학파의 원로 랍비였어요.

 

"젊은 친구들, 책을 끝까지 읽었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잔잔하지만 권위가 있었습니다.

 

"전도서는 12장에서 이렇게 끝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회의장이 조용해졌어요.

 

"보십시오. 저자는 인생의 모든 헛된 것들을 다 경험한 후에야 진정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준 후, 마지막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젊은 랍비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그럼 앞부분의 염세적인 표현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부와 권력, 쾌락을 다 경험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말하는 '헛됨'은 절망이 아니라 통찰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깨달은 지혜로운 자의 고백인 거죠."

 

원로 랍비의 설명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국 전도서도 정경에 포함되었어요. 하지만 이 역시 아슬아슬한 결정이었습니다.

 

 

아가서 - "사랑 노래가 어떻게 성경이 될 수 있는가?"

 

세 번째 밤의 논쟁은 가장 격렬했습니다. 아가서를 두고 벌어진 토론이었거든요.

 

"이것을 들어보십시오."

 

한 랍비가 아가서를 펼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네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고... 네 옷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네 품이 내게 생수의 우물이요..."

 

그가 두루마리를 덮으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이런 노골적인 연애시를 어떻게 거룩한 성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이 읽기에 너무 자극적이지 않습니까?"

 

다른 랍비들도 동조했어요.

 

"맞습니다. 이건 그냥 솔로몬의 개인적인 사랑 노래일 뿐입니다. 종교적 내용이 전혀 없어요."

 

"회당에서 이런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부적절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회의장에서 가장 존경받는 랍비 아키바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의 눈빛이 불같이 타올랐어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온 세상이 아가서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성경이 거룩하다면, 아가서는 지성소만큼 거룩합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어요. 아키바 랍비는 계속했습니다.

 

"여러분은 문자만 보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그린 놀라운 알레고리입니다. 신랑은 하나님이시고, 신부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는 아가서의 한 구절을 인용했어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구나'(6:3) 이보다 더 아름답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까?"

 

젊은 랍비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런 해석이 억지스럽지는 않습니까?"

 

아키바 랍비가 미소지었어요.

 

"억지라고요?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보십시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 광야에서의 40년, 가나안 정착...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 이야기 아닙니까?"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호세아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아가서는 바로 그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아키바 랍비의 열정적인 변론에 감동한 많은 랍비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럼 솔로몬 저작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이야말로 이런 노래를 쓸 자격이 있는 사람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가장 깊은 영적 진리를 가장 아름다운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밤이 깊어갔지만 토론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아키바 랍비의 영향으로 아가서도 정경에 포함되었어요. 하지만 이 책도 후에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밝아오며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길고 긴 논쟁이 끝났습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가 피곤한 얼굴로 일어나 말했어요.

 

"형제들이여, 우리는 오늘 밤 매우 중요한 일을 해냈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에스더서, 전도서, 아가서... 이 책들을 두고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논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책들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한 글자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 제자 하나가 물었어요.

 

"선생님, 그럼 이제 우리의 성경이 확정된 것입니까?"

 

요하난 벤 자카이가 미소지었습니다.

 

"오늘 밤의 결정이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후대의 현명한 사람들이 계속 연구하고 검토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날 야브네에서 내린 결정은 정말로 역사를 바꿨어요. 에스더서, 전도서, 아가서는 모두 구약 정경에 포함되어 오늘날까지 우리가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신중했는지, 우리는 종종 잊곤 하죠.

 

성전이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던 랍비들의 열정과 지혜. 그들이 밤새워 논쟁했던 그 책들을 우리는 오늘도 펼쳐 읽습니다.

 

한 권 한 권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과 기도 끝에 우리에게 전해진 소중한 유산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다음 편에서는 신약 시대로 넘어가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더욱 복잡한 문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많은 "복음서"들과 "서신서"들이 난립하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냈을까요?